공·사립의 양 날개 달아야 보육문제 해결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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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호 02면

사설

공립은 9515원, 사립은 31만3410원. 서울의 공립 또는 사립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의 월 부담금(2017년 기준)이다. 매년 11~12월 국공립유치원 추첨에서 당첨된 학부모가 “로또 맞았다”는 말을 듣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공립에서 누리는 실질적 무상교육 혜택에 있다. 게다가 공립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는 집단 휴원하겠다는 사립유치원의 일방 통보에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이달 18일과 25~26일 집단 휴원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철회했다.

만 5세 이하 영유아를 둔 부모는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을 원한다. 출산 기피나 여성의 경력 단절은 이런 희망이 없는 절박한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영유아 보육과 교육정책의 목표는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과 교육환경 조성이다. 이를 위해 역대 정부는 국공립·직장어린이집과 국공립유치원을 늘려 왔다. 국가가 보육·교육의 책임을 떠맡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도 국공립유치원 취학률을 현재 25%에서 2022년 40% 늘린다는 것이다. 학부모라면 누구든 공감한다.

문제는 돈과 시간이다. 공립유치원 학부모가 부담하는 싼 교육비 뒤엔 숨겨진 비용이 있다. 이는 다른 국민이 부담한다. 서울의 경우 공립유치원 한 곳(6학급 기준)을 짓는 데 공사비가 33억여원이다. 공립유치원 취원율 40%에 도달하려면 유치원을 500개 이상 더 지어야 하고, 공사비만 1조원이 훌쩍 넘는다. 여기에 교원 인건비(한 명당 인건비 평균 2500만원)나 시설 유지비 등도 있다. 공립유치원 설립부터 배치까지 2년 정도 잡는다면 정작 혜택은 지금 갓 태어났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그때까지 돈과 시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보육 천국 스웨덴에선 우리처럼 사립 비중이 높지 않다. 지방정부와 비영리기관이 담당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영유아 보육과 교육을 민간에 떠맡겼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표를 노리고 ‘무상보육’을 내걸면서도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선 사립유치원의 손에 맡겼다. 그 결과 서울의 경우 사립유치원 한 곳당 평균 4억여원이 정부 지원금으로 들어간다. 박근혜 정부가 확대한 무상보육과 누리과정은 민간이 없으면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했다. 이런 현실에서 단번에 스웨덴 같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정부가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보육·교육의 책임을 떠맡는 시점까지 우리 사회가 지금 겪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사립유치원의 집단 압력에 흔들리지 말고 국공립유치원을 세우고 그 수를 늘려 가야 한다. 로또 당첨 같은 혜택을 더 많은 학부모가 누리게 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상당 기간 막대한 재정 투입이 어려운 데다 그 시점까지 감내할 수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일정선에서 공립과 사립 간 타협이 필요하다. 현재 전체 유아교육의 70% 이상을 떠맡고 있는 사립유치원 가운데 자격을 갖춘 곳에 한해 국공립유치원 수준으로 지원해 주자는 것이다. 일본 역시 1970년대 유아교육의 70%를 맡고 있던 사립유치원을 대상으로 ‘선(先)지원·후(後)법인 전환’이라는 과정을 거쳐 사립의 공공성을 강화했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고 있는 ‘공영형 유치원’이 대안이다. 공립유치원을 짓느라 땅을 확보하고 건물을 세우는 데 소요되는 재정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사립유치원 가운데 회계 부정 등의 사례가 없고 교육여건을 갖춘 곳을 법인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여기에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는 위기에 몰린 사립에 살길을 내주고 보육·교육의 공공성을 확대해 달라는 학부모의 요구에도 부응한다.

한유총은 ^공립과 사립의 동등한 재정 지원 ^회계 감사의 예외 적용 등을 주장하며 휴업을 결의했다가 철회하면서 비판을 받았다. 그만큼 내부적으로 사립유치원들이 처한 사정은 천차만별이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사립유치원에 대해 회계 감사는 불가피하다. 건실한 사립유치원들을 공사립의 접점으로 불러내 역할을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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