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직원끼리 때리고 돈 뺏고…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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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경찰서는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감금하고 폭행한 A(18)씨 등 3명을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중앙포토]

서울 강동경찰서는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감금하고 폭행한 A(18)씨 등 3명을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중앙포토]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상대로 강도질을한 10대들이 경찰에 구속됐다.

지난달 초 서울 강동경찰서에 보이스피싱 인출책 아르바이트와 관련한 신고가 접수됐다. "인터넷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다가 필리핀에 있는 회사인데 금고를 옮기는 중요한 일이라 일당 20~30만원을 준다기에 연락을 했다. 그런데 담보로 현금 카드를 보내라더니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게 이상하다"는 신고였다. 조직원이 서로의 현금 카드를 '담보'로 맡아두게 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이었다. 경찰은 제보자를 통해 카드를 전달한다는 핑계로 보이스피싱 조직원과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에 나온 보이스피싱 인출책 A(18)씨와 B(18)씨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길거리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A씨와 B씨는 범행 과정을 묻는 경찰에게 "사실 우리도 이걸로 돈을 못 벌었다"며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렇다. 지난 7월 말 대구에 사는 두 사람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연락을 받고 다른 인출책을 만나기 위해 진주 터미널로 갔다. 새로 인출책으로 일하게 된 신참내기의 체크카드를 받아두기 위해서였다. 터미널에는 인출책으로 일하기로 한 C(18)씨와 그의 동네 친구 3명이 함께 나와있었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라는 것을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며 A씨 일행을 때리고 현금과 금반지 등 50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았다.

보이스피싱 일러스트. [중앙포토]

보이스피싱 일러스트. [중앙포토]

일당은 A씨와 B씨를 놓아주지 않고 차에 태워 모텔에 데려가 감금했다. 인출책으로 활동해온 A씨가 갖고 있던 다른 사람 명의의 현금 인출 카드로 이튿날 입금될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인출하기 위해서였다. C씨 일당은 A씨가 인출한 보이스피싱 피해금 300만원을 갖고 달아났다.

경찰에 붙잡힌 C씨는 자신도 피해자였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보이스피싱 조직에 C씨 명의의 체크카드와 계좌를 제공했다가 통장에 있던 돈을 뺏겼다는 것이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감금 혹행 협박해 350만원 상당의 금품을 갈취한 혐의(특수강도)로 A씨 등 4명을 검거해 3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20일 밝혔다. 강도 피해를 당한 E씨 등 2명도 보이스피싱 피해금 2080만원을 인출해 편취한 사실을 확인해 구속했다. 경찰은 "요즘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 뿐 아니라 인출책으로 범죄에 가담하는 10대가 많다"며 "청년들이 높은 보수에 현혹되지 말고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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