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역사서가 10만부나! … 팩션 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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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Why? '인문서의 사망설'마저 나도는 이 엄혹한 시절에 역사서가 10만 부나 팔렸다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조선왕 독살사건'(이덕일 지음)은 불과 7개월 만에 그 기록을 달성했다. '왕의 남자'가 1000만 관객의 신화를 이뤄가는 동안에는 판매부수가 늘어나 지금은 한달에 1만5000부가 팔리고 있어 올해 안에 20만 부의 '신화'마저 이뤄낼 태세다. 이 책이나 '왕의 남자'는 모두 '팩션(팩트+픽션)'이다.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했지만 글쓴이의 상상력이 더 기발했다.

달리 말하면 역사추리다. 국내에서는 모든 추리소설이 아사상태라지만 유독 역사추리는 상종가를 치는 경우가 많다. 영미권 시장에서는 팩션이 아니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열풍이 거세다. 이 와중에 나온 '조선왕 독살사건'은 오래 전 나온 '누가 왕을 죽였는가'(푸른역사)에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꿨다. 그리고 책 표지에 '의혹과 수수께끼', '음모와 진실' 등의 단어를 넣어 조선왕조판 '판도라의 상자'로 포장한 것이다.

이 책은 국내에서만 260만 부가 팔린 '다빈치 코드'(댄 브라운)를 비롯한 팩션의 흐름을 타기 위한 시도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딱 맞아떨어졌다. 역사서는 남성독자가 대부분이지만 이 책은 20~30대 여성이 절반에 육박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본문에 컬러사진을 60여 장 사용해 상상력을 진실로 믿게 만든, 팩션의 '상식'이라 할 수 있는 편집은 '의혹'을 진실로 믿게 한 큰 힘으로 작용했다. 이 책의 성공은 우리 출판에도 개척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팩션으로 세계 독자를 겨냥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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