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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쓰고 부대 출입도 자유,“지휘관 잘 만난 경우도 문제”

중앙일보

입력

“저처럼 고통받은 경우는 물론, 좋은 지휘관을 만나 일반인처럼 편하게 지내는 경우도 문제가 있다.”

지휘관 따라 ‘극과 극’ 공관병들 #“우리가 무슨 일 하는지 아무도 몰라” #송 국방 “비전투 병력 실태 파악하라”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의 ‘노예 공관병’ 의혹 피해 당사자로 언론 인터뷰에 나섰던 A씨의 말이다. 그는 “폐쇄된 공간이라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밖에선) 잘 모른다.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박찬주 육군제2작전사령관의 공관병으로 복무한 A씨. [사진 공동취재단]

박찬주 육군제2작전사령관의 공관병으로 복무한 A씨. [사진 공동취재단]

군을 제대한 공관병들이나 지휘관 전속 조리병·운전병들은 “우리가 매일 무슨 일을 하는지는 우리 외엔 아무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소속된 부대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는 것이다.

2009년 육군의 한 사단에서 공관병으로 복무한 김모(29)씨는 “공관 생활이 무척 편했다”고 떠올렸다. 다음은 김씨의 회상이다.

“공관에서 사복을 입고 휴대폰도 사용했다. '인격이 훌륭하다'고 소문났던 당시 사단장은 병사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았다. 사실상 사모님(사단장 부인) 관련 일이 주된 업무였다. 사모님이 '회사 일에 필요하다'며 요구한 업무용 자료 찾기와 발표자료(PPT) 만들기가 중요했다. 처음엔 조금 힘들었지만, 곧 일이 익숙해졌다. 이후부턴 공관 생활이 무척 좋았다. 부대 안에서도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사단장 부인의 개인 PC로 자유롭게 인터넷도 할 수 있었다.”

그의 군 생활은 한 마디로 '통제 밖'이었다.

“부대 밖 외출도 자유로웠다. 사단장 부인이 가끔 외부 세탁 같은 심부름을 시켰다. 이를 이용하면 자유롭게 부대 밖을 오갈 수 있었다. 위병소에서 '사모님 심부름으로 밖에 나가야 한다'고만 하면 언제든 출입 기록 없이 나갈 수 있었다. 이런 점을 이용해 다른 사단의 공관병이 운전병과 짜고 밖에 나가 영화 보고 술 마시다 문제를 일으킨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다.”

2012년 공군 소장의 운전병으로 복무했던 김모(30)씨도 “지휘관이 선호하는 운전 성향에만 빨리 적응하면 장점이 많은 보직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속 부관의 연락을 받아야 해 휴대폰을 항상 사용할 수 있었고, 운전하지 않는 시간에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해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포상 휴가도 자주 나갔고 전역할 때는 선물도 받았다”고 말했다.

교회 예배를 보는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과 그의 부인 전모씨. [사진 독자 제보]

교회 예배를 보는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과 그의 부인 전모씨. [사진 독자 제보]

“지휘관 가족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병사의 존재”라는 A씨의 말처럼, 공관병들의 삶은 극과 극이었다. 정상적인 지휘체계와는 상관 없이, 소속 부대에서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하는 탓이다. 시민단체 군 인권센터가 폭로한 박 사령관에 대한 제보들에 따르면, 어떤 공관병들은 새벽마다 박 사령관 가족들이 먹을 감자와 방울토마토를 따는 ‘농사병’이었고, 어떤 공관병들은 박 사령관 자녀를 위해 파티를 열어주는 ‘파티병’이었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은 7일 오전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공관병뿐 아니라 복지시설 관리병을 포함한 비전투 분야 병력 운용 실태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7일 군 검찰단에 소환된 박 사령관의 부인 전모씨는 취재진에게 “(공관병들을) 아들같이 생각하고 했지만 그들에게 상처가 됐다면 죄송하다”고 말했다.

송우영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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