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알처럼 깨끗한 투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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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온나라를 들끓게했던 선거운동은 15일로 대단원의 막을내리고 2천5백여만명의 유권자들은역사적인 12·16대통령선거에서 귀중한 한표릍 행사하는 자리에 나선다.
누구에게 찍을 것인가, 누구를 찍어야 민주화란 시대적 명제를 성취할 것인가, 누구를 찍어야 참다운 안정을 누리면서 이 나라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실로 16년만에 치르는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선거인 만큼 얼마쯤 과열양상을 띠리라는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유세장마다 1백만이상, 혹은 수십만의 인파가 몰리고 엄동의 혹한을 녹인 열띤 분위기는 그 동안의 정치부재, 정치동결에 대한 국민들의 갈증이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한평의 드라머였다.
일부지역의 폭력사태로 후보자의 유세가 중단되거나 불발로 끝나고만 불상사가 있기는 했지만 그 과열된 분위기에 비해 대형사고가 없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물론 정치폭력은 어떠한 이유나 명분으로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극소수의 폭력만을 갗고 우리 국민외 정치수준을 낮춰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그동안 쌓인 갈등과 적대감을 생각할 때 1백만 혹은 수십만명씩 모인 정치집회가 그정도로 끝난 것은 오히려 우리국민의 성숙도를 나타냈다고 볼 수도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최대라는 청중동원 말고도 이번 선거전에는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참으로 숱한 진풍경, 진기록들이 세워졌다. 각 후보들이 갖가지 공약을 남발하는 바람에 막판에는 도무지 그게 누구의 공약인지 조차 모를 지경이 되었다. 「참다운 안정」에 대한 논쟁은 있었지만 아무래도 정책대결의 차원에는 이르지 못했다.
사상 유례없는 혹색선전, 인신공격이 난무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전파매체를 통한 후보자들의 정견발표장이 마련되었지만 본격적인 TV토론이 불발로 끝나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각 당이 쏟아 부은 선거자금이 법정한도를 몇10배 넘은 것은 말할것도 없고 대규모 「일당동원」으로 말썽을 빚은것도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것이다.
선거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할 공무원들은 어떠했는가. 거듭되는 정부측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이 엄정중립을 지켰다고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선거 막바지에 건설부장관이 선거간여 발언으로 전격 경질된 것은 이번 선거에서 보인 공무원들의 자세를 단적으로 드러냈다고 해서 과언은 아니다.
물론 일련의 이러한 부정적 측면이 선거후의 정국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은 평일지도 모른다.
후보자들이 돈을 주면 주는대로 받고 표는 찍지 않으면 된다. 같은 이치로 누가 뭐래든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투표해야 된다는 논리도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어뗘한 경우라도 선거인이상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은 있다. 투·개표과정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유리알처럼 깨끗하게 치러져야한다는 과제가 바로 그것이다.
선거후의 정국운영과 관련, 선거결과에 승복하자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선거결과에 누구나 승복하게 하려면 그 과정, 특히 투·개표만은 깨끗하고 공정해야한다. 공명선거와 결과승복이 표리관계인 것은 상식이다.
60년의 3·15부정선거가 어떤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들출 것도 없이 만의 하나 투·개표과정에 어떤 결정적인 흠이 있다면 그 결과에 불복하려 들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설마하니 이 일촉즉발의 상항에서 어떤 쪽이건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부정을 저지르리라고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극소수 「과잉충성자」자들이 부정 투·개표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할 가능성은 있다.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열기, 부정에 대한 증오가 어느때보다도 높은 점에 비추어 그러한 부정이 용납될리는 없다. 부정을 기도만해도 자신은 물론 그의 소속집단의 파멸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둣 뻔하다.
게다가 선두 세후보의 우열을 점치기 어려운 치열한 접전양상으로 미루어 가장 우려되는 것은 투·개표장의 폭력사태다. 가뜩이나 감정이 날카로와질대로 날카로와진 상황에서 사소한 시비가 걷잡기 어려운 폭력사태를 유발할 수는 얼마든지 있다.
개표과정에서 불리하게된 쪽이 만의 하나라도 의도적으로 폭력사태를 일으킨다면 선거자체에까지 파장이 미치기 십상이다.
따라서 전 투·개표 종사원들은 어떤 종류건 책잡힐 일은 하지 말아야 하며, 공권력도 이제야말로 투·개표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맡은바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동안 과열선거 양상은 어느정도의 선거후유증은 예고해주고 있다. 그러나 투·개표 과정만 깨끗하다면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분위기는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한달동안의 공식선거전이 박빙위를 딛듯 아슬아슬 했다면 투표일 전후는 한층 아슬아슬하다는게 대다수 국민들의 솔직한 심경일 것이다. 이런 걱정이 기우가 되도록 하는 길은 이제 투·개표만은 깨끗하고 공명정대하게 하는것 뿐이다.
우리가 왜 그 비싼 희생과 댓가 위에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선거를 시행하고 있는지 엄숙히 자문해야할 시점이다. 선거의 대의가 아무리 명명백백하다해도 그「마무리」가 잘못되면 정통성의 회복은 커녕 선거는 하나마나한 것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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