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World] 무슬림은 왜 마호메트 만평에 분노하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파키스탄 시위대가 15일 덴마크 총리의 상징물을 불태우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카라치 로이터=연합뉴스]

덴마크 일간 윌란스 포스텐이 이슬람이 금하고 있는 창시자 마호메트의 초상을, 그것도 폭탄테러범처럼 묘사해 실은 것을 놓고 전 세계가 시끄럽네요. 이슬람권과 유럽 간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폭력 사태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요. 이 만평이 왜 문명 간 갈등으로까지 확대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이슬람권이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함께 알아 봅시다.

1. 이슬람권이 왜 이렇게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나요.

한마디로 모욕을 당했다는 주장입니다. 이슬람에서는 마호메트의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걸 금지하기 때문이지요. 또 마호메트를 테러리스트로 비유한 것에 대해 더욱 분노하고 있지요. 윌란스 포스텐에 게재된 12편의 만평 중 마호메트가 쓴 폭탄 모양의 터번 위에 불이 붙은 심지가 그려진 것이 있었지요. 자폭공격으로 죽어 천당에 온 '순교자'들에게 "너희에게 나눠줄 처녀가 다 떨어졌다"고 말하는 마호메트의 모습도 실었습니다.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이 그림들이 자신들의 폭력성을 과도하게 강조해 '이슬람=테러리즘 종교'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하지요. 이슬람의 이미지를 훼손하기 위해 이런 만평을 실었다는 주장이죠. 이에 유럽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지 말라고 이슬람권에 반발했지요. 1월 31일 덴마크 신문이 사과성명을 내자, 바로 다음날 유럽의 10여 개 언론이 이슬람권의 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같은 만평을 옮겨 실었어요. 이러한 유럽 국가들의 반응이 이슬람권을 더욱 자극했지요.

2. 서구에서 마호메트를 그리거나 조각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가요.

마호메트 묘사 그림이 파문을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2년 미국의 PBS 방송은 이슬람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 때 마호메트를 묘사한 장면을 넣었지요. 하지만 이슬람 단체의 반대로 이를 방송에 내보내지는 않았지요.

미 연방대법원에 있는 '세계 역사의 법률 제정가' 대리석 상 가운데 마호메트 상이 있어요. 1997년 이슬람 단체들은 이 동상을 제거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이후 일부 이슬람권에서 소요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서구 방송이나 언론은 그동안 마호메트의 모습을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금기사항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슬람이나 마호메트에 관련한 구미 영화를 보면 예언자의 모습은 나오지 않고 목소리만 등장합니다. 얼굴에 광채가 나오거나 베일을 쓴 것으로 묘사해 예언자의 얼굴 모습을 나타내는 걸 피하기도 한답니다.

3. 이슬람에서 마호메트의 초상을 금지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슬람은 알라(신이라는 뜻)만을 믿는 철저한 유일신 종교이죠. 따라서 알라와 마호메트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조각상 등이 자칫 경배의 대상이나 우상이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슬람 경전인 코란이나 예언자의 언행록인 하디스에 신이나 예언자의 모습을 조각하거나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금하는 명시적 조항은 없어요. 이슬람 법학자들은 코란의 42장 11절에 "(알라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그분과 닮은 것은 아무것도 없나니"라는 성구를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요. 아름답고 위대한 알라를 사람의 손으로 묘사할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알라의 모습을 묘사하려는 시도 자체를 알라에 대한 모독으로 여긴답니다. 또 이는 예언자 마호메트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보고 있지요. 결국 알라의 계시라기보다는 후대의 이슬람 학자들이 정해 관행으로 내려온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4. 이슬람에선 금지하는 게 많나요?

이슬람에서는 여러 종류의 금기사항이 있습니다. 알라가 계시를 통해 강력히 금지한 것이 있고, 예언자 마호메트가 하지 말라고 규정한 것도 있습니다. 여기에 후대 이슬람 학자들의 합의나 판단에 의해 추가한 금기사항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는 알라가 코란의 계시를 통해 금한 음식이지요. 예언자 마호메트는 발톱이 날카로운 동물 등을 먹지 말라고 더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남자가 부인을 동시에 네 명까지 둘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마호메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슬람 국가와 사회가 확대되고 이슬람 경제법, 결혼과 이혼을 다루는 규율 등의 제정이 필요했지요. 이런 것들은 대부분 후대의 이슬람 학자들이 만든 것이랍니다.

5. 이번 사태는 결국 서구와 이슬람권 간 반감 때문에 터졌나요

그렇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점령,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지속, 이란 핵 개발에 대한 서구의 반발 등으로 중동권의 서구에 대한 반감이 거센 상황이지요. 이슬람권은 지난 20여 년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아래에서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따라서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종교를 모욕하는 것으로 보이는 만평이 서구에서 등장하자 폭력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지요. 알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대서방 테러를 본격화한 것도 91년 걸프전 이후였어요. 미국이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기 시작한 해였지요.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마호메트 승천을 표현한 1550년도 그림. 구체적 묘사가 금지돼 베일로 얼굴을 가린 모습.

마호메트=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이분을 '최후의 예언자'로 여기지요. 서양에선 이슬람교의 창시자로 칩니다.

현대 아랍어로 '무하마드'라고 해요. 610년 40세 때 메카 교외의 히라 산에 있는 동굴에서 명상을 하다가 천사 지부릴(가브리엘)을 통해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처음 받았다고 합니다. 그 뒤 계속 계시를 받아 종전까지의 다신교를 부정하고 알라만 믿는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지요.

서기 622년 박해를 피해 메카를 탈출, 야스리브(지금의 메디나)로 갔는데 이를 히즈라(헤지라:성스러운 천도라는 뜻)라고 합니다.

훗날 이 해를 이슬람력의 기원으로 삼게 됐지요. 630년 메카로 진군하고 그 뒤 아라비아 전역을 정복하면서 이슬람교가 널리 퍼지게 됐답니다. 63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