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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당한 왼팔 대신 국내 최초 이식 받은 팔로 21일 프로야구장에서 시구하는 손진욱씨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월 국내 최초로 팔 이식 수술을 받은 손진욱씨가 대구의료관광진흥원 앞에서 수술 받은 왼쪽 팔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백경서 기자

지난 2월 국내 최초로 팔 이식 수술을 받은 손진욱씨가 대구의료관광진흥원 앞에서 수술 받은 왼쪽 팔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백경서 기자

“(2년전 사고로 왼팔을 절단했는데 이식 받은 팔로) 제 인생에 다시 야구공을 내 손으로 던질 수 있다니 눈물납니다. 너무 기쁩니다.”

손씨 "팔 절단 된 후, 마음 아파 야구장 못 가" #생산직 노동자였던 손씨, 팔 이식 후 홍보맨으로 제2 인생 #"팔 이식 건강보험 적용위해 적극 뛰어다닐 것" #

오는 2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리는 삼성 라이온즈 대 LG트윈스의 경기에서 시구자로 결정된 손진욱(36)씨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18일 대구의료관광진흥원에서 가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도중에 시구자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손씨는 "내가 야구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씨는 지난 2월 국내 최초로 팔 이식 수술을 받았다. 왼쪽 팔을 잃기 전까지 회사 야구 동호회서 활동할 정도로 야구를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2015년 여름 공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왼쪽 팔이 절단됐다. 그때부터 손씨는 야구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는 “사고 후 마음이 아파 야구 경기를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 3일 대구시 남구 영남대학교병원에서는 국내 최초 팔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진 대구시]

지난 3일 대구시 남구 영남대학교병원에서는 국내 최초 팔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진 대구시]

손씨는 사고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치료에 전념했다. 손씨는 "W병원을 다니면서 팔 이식 대기자에 명단을 올렸지만, 실제로 수술받게 될 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영남대병원에서는 우상현 W병원장 집도로 국내 처음이자 아시아에서는 2번째로 팔 이식수술이 시행됐다. W병원·영남대병원 의료진 30여 명이 힘을 합쳐 10시간에 걸쳐 진행한 수술이었다. 손씨는 “수술이 끝나고 눈을 뜨니 의료진과 부모님이 보여 펑펑 울었다”며 “그날 이후 새 생명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손씨는 5월부터 W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W병원에 따르면 손씨는 현재 운전·빨래 등 기본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상태다.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다는 의료진의 진단을 받은 손씨는 대구시의 도움으로 지난 6월 시 산하 기관인 대구의료관광진흥원에 취직했다. 대구에 여행 온 관광객들에게 팔 이식 수술 등 대구의 발전된 의료기술을 홍보하는 일이 손씨의 주된 업무다.
회사에서 손씨는 제일 나이 많은 막내지만, 적극적인 자세로 동료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고 한다. 손씨의 동료 백하나(28) 주임은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 금방 일을 익혔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 팔 이식 수술을 받은 손진욱씨와 함께 일하는 대구의료관광진흥원 동료들. 백경서 기자 

국내 최초 팔 이식 수술을 받은 손진욱씨와 함께 일하는 대구의료관광진흥원 동료들. 백경서 기자 

지난 5일 손씨는 첫 월급으로 W병원과 관광진흥원에 떡을 돌렸다. 손씨는 "사실 가장 감사한 건 우상현 W병원장님이다. 팔 이식 수술이 가능하단 소식을 듣고 나서도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과 팔 이식이 위법이라는 문제가 걸려 고민했다. 그때 병원장님이 한번 해보자고 믿음을 주셨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손진욱씨는 첫 월급을 받은 기념으로 W병원에 떡을 돌렸다. [사진 W병원]

지난 5일 손진욱씨는 첫 월급을 받은 기념으로 W병원에 떡을 돌렸다. [사진 W병원]

사실 국내 현행법상 팔 이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는 신장·간장·췌장·심장·폐·골수·안구 등 7개 장기와 소장을 이식하면서 함께 따라오는 위장·십이지장만을 이식 대상 장기로 정하고 있다.
우 병원장은 지난 2월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40대 남성의 유족이 팔 기증 의사를 밝히자, 급히 수술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수술이 끝난 후 우 병원장은 "잘못하면 감옥에 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지난 2월 대구시 남구 영남대학교병원 세미나실에서 열린 수술 결과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우상현 대구 W병원장. 우 병원장은 30여 명의 의료진과 함께 국내 최초 팔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진 대구시]

지난 2월 대구시 남구 영남대학교병원 세미나실에서 열린 수술 결과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우상현 대구 W병원장. 우 병원장은 30여 명의 의료진과 함께 국내 최초 팔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진 대구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손씨의 회복 상태도 좋지만, 또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 팔 이식 관련 처방을 받았을 경우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식수술 자체가 허용이 안되니 건강보험 적용도 불가하다. 손씨가 평생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를 비롯한 많은 약과 피검사 비용 등 병원비는 한달에 100만원이다.
지금은 병원과 시에서 지원해 주지만, 언제까지 도움만 받을 수 없다는 게 손씨의 생각이다. 손씨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한달에 10만원으로 금액이 확 줄어든다“며 ”나뿐만 아니라 이후에 팔·다리 이식을 받을 사람들을 위해서도 건강보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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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는 손씨의 사례를 보고 장기이식법 개정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손씨는 "제가 홍보맨으로 변신한 이유는 정부에 팔 이식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하루빨리 법이 개정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삼성라이온즈의 투수 임현준이 왼손으로 공을 던지고 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삼성라이온즈의 투수 임현준이 왼손으로 공을 던지고 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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