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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고령 의성 청학마을…전국 으뜸 정보화마을 된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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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군 신평면은 첩첩산중에 놓인 곳이다. 전체 행정구역의 76%가 임야여서 벼농사를 짓기 어렵다. 10일 오전 골짜기를 따라 뻗은 편도 1차로 국도를 달리면서 본 것도 온통 초록빛뿐이었다.

65세 이상 주민이 67%…'오지 중 오지' #청학마을 정보화마을 대회서 대상 #농산물 가공공장 들어서며 소득 증가 #폐교를 활용해 지속적 정보화 교육 #일자리 생긴 주민들 공동체 회복도 #

그러다 신평면 '청학마을'이 가까워져 오자 저 멀리 흰색으로 뒤덮인 산 하나가 보였다. 언뜻 보기엔 산 중턱에 눈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의성군의 이날 최고기온은 32.5도로 눈이 올 상황은 아니었다.

경북 의성군 신평면 청학마을에 있는 청학산을 왜가리떼가 뒤덮고 있다. 이곳은 국내 최대 왜가리 서식지다. 의성=김정석기자

경북 의성군 신평면 청학마을에 있는 청학산을 왜가리떼가 뒤덮고 있다. 이곳은 국내 최대 왜가리 서식지다. 의성=김정석기자

다가가서 보니 산은 수천 마리의 왜가리로 덮인 모습이었다. 나무 우듬지마다 올라앉은 왜가리는 시끄럽게 울어대며 퍼덕였다. 이곳은 전국 최대 규모의 왜가리 서식지다. 마을 이름이 '청학마을'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짙은 회색 왜가리의 깃털이 달빛을 받으면 군청색으로 보인다.

청학마을이 위치한 신평면은 전국에서 가장 고령화가 심한 곳이기도 하다. 65세 이상 인구가 67%다. 마을 막내가 52세다. 산을 덮고 있는 왜가리를 찍기 위해 찾아오는 사진가를 제외하면 마을엔 청년이 없다. 의성군 18개 읍·면 중 가장 규모가 작다.

경북 의성군 신평면은 국내 최대 왜가리 서식지라는 점을 활용해 지역을 홍보하고 있다. [사진 의성군]

경북 의성군 신평면은 국내 최대 왜가리 서식지라는 점을 활용해 지역을 홍보하고 있다. [사진 의성군]

이런 청학마을이 최근 행정자치부가 주최한 '전국 정보화 마을 지도자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10년 정보화 마을로 지정된 청학마을이 전국 337개 마을과 경쟁해 최고점을 얻었다. 91가구 176명이 모여 사는 '작고 늙은 마을'이 대상을 차지한 비결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주민들의 늘어난 수입이다. 정보화 마을 제도는 정보화에 소외된 농·산·어촌 지역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2001년 시행됐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농촌에도 정보화가 어느 정도 되고부턴 주민 소득을 높이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게 정보화 마을의 새 역할이 됐다.

정보화 마을 평가는 3개 분야 11개 지표를 통해 이뤄진다. 소득 증진 분야 5개 지표, 지역공동체 활성화 분야 5개 지표, 정보격차해소 분야 1개 지표다.

김종명 행자부 지역정보지원과 사무관은 "제도 시행 초기만 해도 정보격차 해소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현재는 이 비중이 낮아지고 소득 증대와 공동체 회복으로 중심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청학마을 역시 주민 소득 증진 성과가 높게 평가됐다.

경북 의성군 신평면 청학마을 주민들이 콩류 가공공장에서 메주를 만들고 있다. [사진 청학마을]

경북 의성군 신평면 청학마을 주민들이 콩류 가공공장에서 메주를 만들고 있다. [사진 청학마을]

청학마을 주민들의 소득이 훌쩍 뛴 결정적 계기는 최근 마을에 농산물 가공 공장이 세워지면서다. 이 공장에선 콩과 잡곡, 고추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가공식품을 만든다. 메주·간장·두부·된장·청국장·참기름·고추장 등이다.

공장이 세워지기 전까지 주민들은 밭에서 수확한 작물을 그대로 농협이나 중간상인에게 팔았다. 제때 팔지 못하거나 작황이 좋지 않을 땐 제값을 못 받기 일쑤였다.

마늘과 고추, 콩 농사를 짓는 황익기(55)씨는 "예전엔 풍년이면 풍년인 대로, 흉년이면 흉년인 대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 작물을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팔게 돼 남는 게 배 이상 많아졌다"고 말했다.

경북 의성군 신평면 청학마을에 있는 콩류 가공공장 뒤편으로 장독에 든 장류가 보관돼 있다. [사진 청학마을]

경북 의성군 신평면 청학마을에 있는 콩류 가공공장 뒤편으로 장독에 든 장류가 보관돼 있다. [사진 청학마을]

공장이 생기면서 주민들 사이의 관계도 끈끈해졌다. 느슨해진 지역 공동체가 회복됐다는 의미다. 주민 상당수가 공장에서 일하게 되자 데면데면하던 이웃이 서로의 경조사를 꼼꼼히 챙기는 사이가 됐다.

서용일(75)씨는 "정보화 마을 지정 이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고령화되면서 서로 얼굴 보는 횟수가 적었는데 매일 함께 일하고 어울리며 마을에 활기가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정보화 교육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주민들에게 인터넷 검색, 스마트폰 사용법 등을 교육한다. 2007년 폐교한 중율초를 리모델링해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북 의성군 신평면 청학마을 주민들이 지난 2월 정월대보름을 맞아 회갑·칠순·팔순을 맞은 주민들을 축하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청학마을]

경북 의성군 신평면 청학마을 주민들이 지난 2월 정월대보름을 맞아 회갑·칠순·팔순을 맞은 주민들을 축하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청학마을]

정보화 교육을 받은 주민들 중 일부는 실제 온라인으로 상품을 판매하거나 마을 홍보를 하고 있다. 권오한(57) 청학정보화마을 프로그램 관리자는 "나부터 온라인을 이용한 상품 홍보에 앞장서자는 취지에서 2011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앞으로 소득을 보다 높이기 위해 1차(농업)·2차(가공업)산업을 넘어 3차(관광·체험)산업까지 나설 예정이다. 6차(1×2×3차)산업 구조의 완성이다.

경북 의성군 신평면 청학마을 정보화센터 교육장에서 주민들이 컴퓨터 활용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청학마을]

경북 의성군 신평면 청학마을 정보화센터 교육장에서 주민들이 컴퓨터 활용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청학마을]

임석장(71) 청학정보화마을 위원장은 "국내 최대 왜가리 서식지라는 점을 활용해 왜가리를 관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이 돌담길과 숲길을 걸으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의성=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청학마을 위치도. [자료 네이버지도]

청학마을 위치도. [자료 네이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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