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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파란 머리로 살아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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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주수민홍익대 영어영문학과 2학년

주수민홍익대 영어영문학과 2학년

쌀쌀했던 지난겨울 지하철역을 들어가다 문득 숨이 막혔다. 똑같이 어두운 무채색 옷에 똑같은 머리를 한 사람들이 역사에 빼곡했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날 느낀 아찔함 때문일까. 나는 평소 좋아하던 파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기로 결심했다.

염색 후 나는 상당히 눈에 띄는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색이 예쁘다고 같이 기뻐해 주었다. 교수님들이 강의실 밖에서 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운이 좋게도 헤어 모델도 해봤다. 머리를 물들이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소중한 경험들이었기에 스스로에게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곧 다른 시선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앞에 앉은 할아버지 한 분은 한참 동안 내 머리를 살피더니 혀를 끌끌 찼다.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다니던 요양원과 공공기관에서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묘하게 달라졌다. 이상하게 나만 따로 떼어 자신들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배치했다. 내가 무슨 사고를 일으키지 않을까 감시하듯이 말이다. 기성세대만 이런 건 아니었다. 학교에서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 내 또래의 젊은 커플이 노골적으로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더니 ‘관종’(관심을 받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을 뜻하는 비속어)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파란 머리라는 이유만으로 어딜 가든 간에 ‘불편한 시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나는 달라진 게 없다. 그저 머리색 하나가 바뀌었을 뿐이다. 평소에 나름 성실했고, 스스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 행동과 신념도 예전대로다. 그럼에도 이 사회의 일부는 이전까지 내가 느껴보지 못한 시선을 보내왔다.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내가 달라진 이유를 찾아내려는 듯 보였다.

머리 색깔 하나 바꾼 게 이 정도인데 다른 ‘소수자’는 어떨까. 외국인·장애인·성소수자 등 한국 사회의 다수와 다른 모습을 가진 이들이 느끼는 차별은 어느 정도일까. 어떤 선입견과 불쾌감을 묵묵히 견뎌내야만 했을까. 고작 두 달 남짓한 시간을 파란 머리로 살아온 나는 그 정도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한 사회일지도 모른다. 세계화 된 세상에서도 우리에게는 단일민족이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차이는 차이일 뿐이며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다르다. 그러니 이제 그 불편한 시선을 거두어 달라. 사실 지금 나는 분홍 머리를 하고 있다. 이제 사회는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주수민 홍익대 영어영문학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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