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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가족의 탄생]"나는 '캣맘'" 배우 선우선의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중앙일보의 디지털 광장 시민마이크가 25일부터 디지털 다큐멘터리『新가족의 탄생: 당신의 가족은 누구입니까』를 연재합니다. 이 땅에서 '가족'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다양한 이들을 그들의 목소리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첫회는 배우 선우선씨입니다. 12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캣맘' 선우선씨의 삶을 전해드립니다.


배우 선우선 씨를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코쿤나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경록 기자 

배우 선우선 씨를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코쿤나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경록 기자

1막 내게로 온 삶, 산파 선우선

‘엄마옹~' '위이~위이~'
고양이가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겠지요. 이 '아이들'과 함께 지낸지가 벌써 십수년이 되었습니다. CF 모델을 하던 때였어요. 피부병이 심한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습니다. 온몸에 피딱지들이 엉겨붙어 제가 봐도 좀 위험해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피부병이 옮을지도 모른다고 주변에선 말렸지만, 외면할 수 없었어요. 치료만 하고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내주자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우리집 기둥 건강이(수컷)입니다.

배우 선우선씨의 가족 '건강이'. [사진 광윤인터내셔널]

배우 선우선씨의 가족 '건강이'.[사진 광윤인터내셔널]

건강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제 삶도 바뀌었습니다. 산책도 하고 목욕도 시켜주고, 점점 건강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워졌습니다. 이후 행복이(잃어버림·암컷)와 행운이(수컷), 유기묘 블랑쳇(암컷)이 가족이 되었습니다. 행복이를 잃어버린 것이 영화 『가시』(2013년 개봉) 촬영 때 일인데 태어나서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영화 촬영이 힘들 정도로 가족을 잃은 슬픔이 너무 컸어요.

배우 선우선씨가 '가족'인 고양이들의 가계도를 직접 그리며 설명해주고 있다. 선우선씨의 고양이 가족들은 영화촬영 일정과 스트레스를 감안해 인터뷰에는 동행하지 않았다. 김경록 기자 

배우 선우선씨가 '가족'인 고양이들의 가계도를 직접 그리며 설명해주고 있다. 선우선씨의 고양이 가족들은 영화촬영 일정과 스트레스를 감안해 인터뷰에는 동행하지 않았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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탯줄을 끊던 날 

'사건'은 그 이후로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행운이와 블랑쳇이 가정을 꾸리면서 새끼를 낳게 된 거에요. 블랑쳇이 임신을 해서 배가 불러오니까 태교를 해주고 싶었어요. 제 배 위에 올려놓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요. 제가 유난한 건가 했지만 방법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임신했을 때 동물병원에서 초음파 사진을 찍었어요. 꼬물꼬물하는 새 생명들이란. 기분이 묘했어요.

2014년 12월, 블랑쳇이 이상한 기미를 보이는 거에요. 와서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듣겠는' 거에요. '아 아기를 낳는다는 건가보다' 생각했죠. 한.밤 중이라 병원을 가기가 어려웠어요. 가다가 출산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고요. 일단 출산할 준비를 했어요. 물을 끓여 가위를 삶고, 가려줄 상자도 구해왔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새끼 고양이들이 미끄러져 나오는데, 생명이 태어나는 걸 처음봤거든요. 뭉클했어요. '잘한다. 사랑해, 블랑쳇' 응원했더니 힘을 내더라고요. 한 마리는 태어났는데 숨을 쉬지 않아 얼른 인공호흡을 해줬는데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난생처음 산파 노릇을 하면서 책임감이 생겼어요. 끝까지 아이들을 책임지겠다고.

배우 선우선씨와 통키 [사진 광윤인터내셔널]

배우 선우선씨와 통키 [사진 광윤인터내셔널]



2막 오늘, 운명대로
배우의 무게 vs '캣맘'의 무게 

고양이들과 영화를 찍기로 했어요. '올포유'(가제·박범준,박병환 공동 연출, 코쿤나인 제작)' 주연을 맡았어요. 반려묘 12마리와 함께 출연하는데, 휴먼드라마가 될 예정이에요. 산파 노릇 두 번하고 식구가 늘었는데 사실 아이들이 산책을 좋아해요. 날씨가 좋은 날, 유모차에 고양이들을 태우고 산책하는 것을 저도 참 좋아하고요. 그러다 보니 고양이 영화 제안에 마음이 갔어요. 감독님 배려도 좋았고요. 사실 직업이 배우잖아요. 고양이 이미지로만 각인되는 것이 불안하긴 하죠. '선우선은 고양이 엄마야'라고 하는 고정관념이 생기면 배우 생활에 지장을 줄 수도 있고요.

배우 선우선씨와 행운이 [사진 광윤인터내셔널]

배우 선우선씨와 행운이 [사진 광윤인터내셔널]

하지만 저는 운명대로 따를 거에요. 제가 받은 아이들이잖아요. 가족인데요. 제가 어떤 캐릭터로 연기하면, 그 캐릭터로 봐주시면 좋겠다는 생각해요. 앞으로 배우로서 가야할 길이 있잖아요. 늙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놓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저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배우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도 했어요. 각오도 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들을 책임져야겠다고. 만에 하나 (배우란 직업을 ) 내려놓을 수도 있을까, 생각도 해본 것 같아요.


배우 선우선씨는 코쿤나인이 제작하는 휴먼 드라마 영화 '올포유(가칭)'에 고양이 가족과 함께 출연한다./김경록 기자 

배우 선우선씨는 코쿤나인이 제작하는 휴먼 드라마 영화 '올포유(가칭)'에 고양이 가족과 함께 출연한다./김경록 기자

3막 우리 가족의 내일

사실 배우의 길은 우연히 들어서게 됐죠. 친구가 오디션을 보러가는데 따라가면서 인생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건강이를 만나고 또 가족이 생겼고요. 사실 한번은 제가 사는 동네에 길냥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돌맞고 쫓겨나는걸 보고 길냥이 급식소를 만든 적이 있었어요. 원목으로 직접 만든 거였는데. 매일 밥을 줬어요.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게.

그런데 어느 날,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사람들이 싫어해서 치웠다고요. 달려가보니 급식대가 박살이 나있었어요. 사람들이 싫어하면 치우면 되는데, 그걸 그렇게 망가뜨릴 이유는 없었는데…. 이후로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동물들과의 교감을, 그 분들도 언젠가 알게 될 때가 오겠지요. 우리집 아이들은 제가 힘들 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었어요. 제가 고양이들에게 사랑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고양이들도 저를 사랑해주는 거잖아요. 그 사건 이후로 길냥이를 돌봐주는 것은 싸워서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차에 밥을 실어놓고 다니면서 혹시 눈에 띄면 밥을 주는 정도로만 하고. 있어요.

중요한 건 말이에요, 이 아이들이 생명이라는 거에요. 『거북이 달린다』(2009) . 촬영 때 일이에요. 소가 싸워야 하는데, 싸우기 싫어서 소가 우는 거에요. 생명들이니까 함께 사랑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에게 가족이란, 사랑이에요. 없어서는 안되는 울타리죠. 여러분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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