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눈] ‘한강의 기적’ 원동력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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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호 31면

유럽을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더러 만나게 된다. 지난달에 영국 런던에 갔을 때 이야기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아시아 퓨전음식점에 들렸다. 그 식당은 자리가 너무 비좁아서 모르는 사람들과 거의 부딪쳐 가면서 밥을 먹어야 했다. 그래서 옆에 앉은 사람과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하게 됐다. 미국 중소기업 경영자인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이집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석유화학 공장 건설 관련 프로젝트인데 한국의 경험을 모델로 삼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산업화 경험이 이집트까지 참 멀리도 왔구나”하고 생각했다.

이집트의 석유화학산업 생산 규모는 너무 작고 관련 제품은 주변 국가로부터의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중동 정세가 불안한데 전략적 의미가 큰 석유화학산업의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 경제의 리스크가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미국 기업인이 추진 중인 석유화학 공장이 완성되면 이집트의 석유화학 제품 자급자족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물론 이집트의 장기적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문제는 프로젝트 진행 과정이다. 몇 년째 사업을 추진 중인데 여러 가지 난제에 부닥쳤다고 한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국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성공신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한국은 어떻게 해서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주제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장시간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이 대화를 통해서 ‘한강의 기적’ 같은 신화가 발전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한국의 경험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 여러 나라에 생생히 보여 주는 산 증거였다.

그런데 우리가 내린 결론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단순했다. 한국의 경제기적은 일과 노동, 책임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집트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도 분명해졌다. 열악한 인프라 시설 건설이나 부패 척결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에 대한 태도였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기독교도의 근검절약과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calling)에서 찾았다.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제는 ‘한국의 경제 발전과 한국인의 일에 대한 정신’이라는 원칙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나 코르군
한국외국어대 러시아 연구소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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