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내마=홍성호특파원|북괴공작원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신병 인수해도 범인아니면 입장 난처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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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KAL707기가 실종된지 8일째, 그리고 위조여권을 소지했던 「신이치」·「마유미」라는 가명의 남녀가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된지 6일째가 되는 7일현재까지 KAL기의 행방이나 이들 남녀의 신원과 범행관련 여부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있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은 바레인에서 음독자살 소동을 벌인 「마유미」 일행의 신분을 캐기위해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사건자체를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있다.
지문조회나 잡다한 주변인물조사, 행적수사등을 통해 양국은 이들이 그동안 지명수배를 받았거나 우범자로 지목됐던 부류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외부인임을 확인했을 뿐이다.
바레인 현지에 파견된 양국의 특별수사팀 또한 이들의 유류품을 검증한 결과 북한공작원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을뿐 이를 입증할만한 단서나 물증는 찾지 못했다. 현시점에서 사건추이를 종합해보면 한국측은「마유미」일행이 북한의 사주를 받은 범죄조직의 첩자였다는 심증을 굳히고 이를 근거로 바레인 및 일본측에 대해 이들의 신병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재고해야할 점은 한국이 사건발생단계에서부터 앞뒤를 재지 않고 너무나 성급하게 개입하지 않았나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한국은 적어도 「마유미」일행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제3국임에 지나지 않는다. 국적기에 탑승했던 승객이 자살소동을 벌였다고 해서 이를 용의자로 몰아 신병인도를 요구한다는 것은 3자 입장에서 보면 무리가 있다.
바레인측이 수사협조를 의뢰하거나 특별조사팀의 파견을 요청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자발적으로 이를 실행에 옮긴것은 사건의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떠안게되는 입장을 자초한 셈이다. 99%의 심증이 가는것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나머지 1%의 물증이 없는한 신병인도의 명분은 세워지기 어렵고 이는 또한 바레인-한국-일본 3국의 합의만으로는 국제관례상 안정되기 어려운 것이다.
한국측은 1백15명의 인명과 국가재산을 앗아간 KAL기사고가 범죄행위라면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이를 규명하는 것이 책임이자 권리이기는 하나 이번 사건의 경우는 한국측이 스스로의 입장만을 지나치게 의식한 느낌이다.
한국이 바레인과 일본의 양해아래 설사 신병을 인수한다하더라도 「마유미」등의 선원파악과 KAL기 범행에 대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앞서의 성급한 판단 때문에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는 궁지에 몰리게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과 같은 경우에는 한국이 국외자적인 입장을 고수해 신병이 일단 일본으로 넘어가게 한 다음 그사이에 결정적인 물증을 확보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나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제 한국이 신병인도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특별수사팀까지 보낸 단계에서는 단시일내에 의무적으로 물증을 찾아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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