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유세의 허와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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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일부터 안방에 선보인 방송유세는 선거양상에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다 주고 있다. 후보자들과 찬조 츨연자들의 인물과 성격, 연설내용은 각각 다르나 차분한 말투와 조용한 표정, 그리고 억지 논리가 유세장에서 보다는 훨씬 줄어들었다는 공통된 현상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라 하겠다.
방송수신기 보급률이 1백%에 가까운 우리 현실과 선거에 대한 높은 관심도에 비추어 대부분의 유권자가 이미 한 두 번쯤은 방송유세를 시청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유세내용의 전달 효과도 유세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대화됐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유세장에서 일반화돼 있는 선동발언과 동원된 조직에 의한 과열된 반응조작이 철저히 배제돼있기 때문에 연설자들의 유세내용이 소상히 전달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법으로 평가된다. 시청자들은 냉정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이들의 연설내용에 대해 분석, 비판이 가능한 것도 분명한 이점이며, 유세장을 난무하는 폭력과 소란이 없다는 점도 방송유세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뇌파시대에 걸맞는 「방송정치」의 첫 시도가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방송유세 프로그램이 방송사의 의사가 전혀 개재되지 않은 광고의 성격을 가진 현재의 방식이라면 제작 자체도 후보자가 소속된 정당에 맡겨야 한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에는 일리가 있다고 본다.
5천5백만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산 2O분간을 한사람의 연설로만 지루하게 끝낼게 아니라 참고자료나 관련화면을 활용하여 완벽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다. 그렇게 하면 광고주(후보소속정당)의 전달효과나 시청자의 수용효과도 증대될 수 있는 것이다.
방송유세가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연설자의 일방적인 주장과 설득이 있을뿐 시청자의 반응을 알 수 없으며 시청자 목에서도 반론이나 호응의 의사표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너무 정적이고 답답한 점이 없지 않다. 또한 출연자의 연설내용의 진실성 또는 타당성여부를 판별할 능력이 부족한 시청자의 경우를 상정할 필요도 있다. 따라서 방송유세보다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TV등 전파매체를 통한 방송토론이다.
안방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후보자들의 면면을 동시에 상호 비교할 수 있고 후보자들의 주장과 공약을 서로 분석, 비판하게 함으로써 그 허실을 좀더 깊이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후보간 1대1 토론에 합의한 것 같고, 또 모든 후보가 참여하는 토론방법도 거론되고 있다 한다. 어떤 형식을 취하건 규정된 시간에 얽매일 것 없이 후보들의 방송토론은 실현돼야 한다. 그것이 유권자들의 올바른 판단과 선택에 도움을 주는 일이라면 시간을 제한한 법규 따위는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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