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행 직전 극적으로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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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빈→베오그라드→바그다드→아부다비→바레인.
수상쩍은 일본인행세 남녀의 행적이 점차 드러나며 1백l5명 목숨을 앗은 KAL858기 추락참사는 불순집단의 계획적인 폭탄테러범죄로 심증이 굳어지고 있다.
「하치야·신이치」(69)·「하치야·마유미」(27). 위조 일본여권을 소지한 남녀는 일본 동경서KAL858기 항공권을 구입한뒤 동구공산권인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를 거쳐 바그다드에서 KAL기에 탑승, 다른 13명과 함께 아부다비에서 내렸고 아부다비를 출발한 KAL기는 꼭5시간쯤 뒤인 29일하오2시33분쯤 버마·태국접경 상공에서 폭발, 추락했다.
아부다비서 내린 남녀는 사건발생시간 바레인으로가 하루밤을 자고 로마로 탈출하기 직전 공항에서 붙들려 공안조사실에서 취조중 독약을 마시고 쓰러졌다. 용의자지목에서 음독까지 서울∼동경∼바레인을 잇는 3각협조 24시간을 추적한다.
◇사고KAL기 탑승=11월19일 일본 동경에서 항공권을 구입한 이들은 23일까지 오스트리아 빈의 한 호텔에서 묵었다. 이들은 23일하오2시25분(현지시간·이하같음)빈을 출발해 하오3시30분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5일간 머문후 28일하오2시30분 인디안항공 226편으로 바그다드에 경유승객으로 도착, 공항안에서만 3시간을 보내고 하오11시37분사고기인 KAL858편에 올랐다.
◇기내행적=2등석 두번째 줄인 7B와 7C에 앉은 이들은 나이차 때문에 부녀지간으로 보였으나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행동했다. 음료수와 식사에도 손을 안댔다. 무표정했으나 어딘가 초조해 보였다는 것이 승무원의 사후증언.
비행 한시간쯤뒤 남녀는 좌석을 바꾸었고 남자가 화장실을 다녀온 듯 했다.
한국말과 일본말은 못알아듣는 듯 행동했고 영어로 묻는 승무원들의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의사표시를 했다.
이들은 아부다비에서도 경유승객으로 11시간55분간을 공항에서 기다리다 미리 예약한 스케줄을 2시간 앞당겨 걸프항공003편으로 아부다비를 출발, 29일하오2시30분 바레인에 도착했다.
◇추적=KAL기가 실종된뒤 방콕지점으로 긴급연락을 받은 KAL아부다비지사장 김태환씨 (41)등 직원들은 아부다비에서 내린15명중 일본인으로 표기된 2명을 찾아내고 이들이 공산권인 유고를 거쳐왔다는 사실을 확인, 이들의 행방을 쫓기 위해 30일 하오5시 바레인으로 향했다.
김지사장은 이들 남녀가 72시간 체류가 가능한 통과비자로 바레인에 입국한 사실과 바레인 리전시호텔 611호에 투숙한 사실, 1일 요르단항공 607편으로 암만을 거쳐 로마로 떠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30일 밤늦게 호텔로 찾아간 김지사장은 여행목적등을 캐묻자 이들은『왜 귀찮게 구느냐』 고 짧은 영어로 신경질을 냈다.
김지사장의 연락을 받은 KAL본사와 한국정부는 즉각 일본측에 이들의 신원·확인을 요청했고 일본외무성은 「하치야· 먀유미」라는 이름의 여권은 발급된 사실이 없음을 통보해왔다.
◇확인본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바레인주재 대사대리 김정기서기관은 1일 새벽 리전시호텔로 찾아가 남자를 만났다.
여자와 같은 방을 쓰는 잠옷차림의 남자는 『우리는 부녀간이며 2일 로마로 떠난다』며 『바레인에 온 것은 유럽날씨가 추워 잠깐 들른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김서기관이 떠난 직후 들이닥친 일본대사관직원들은 짐도 남겨놓은 채 호텔을 나서려는 이들 남녀를 발견하고 바레인당국에 출국정지를 요청했다. 여자가 소지한 여권의 번호가 남자에게만 부여되는 위조여권이었기 때문이다.
◇음독자살=출국수속을 밟던 중 바레인 이민국직원에 의해 공안사무실로 연행된 이들은 『왜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있는냐』고 다그치자 대답을 않고 담배를 꺼내 문 뒤 쓰러졌다. 담배속엔 캡슐형 극약이 들어있었다.
공항경찰은 즉시 이들을 공항인근 「알마니아」 병원으로 옮겼으나 병원에 도착했을때 남자는 이미 숨졌고 여자는 혼수상대로 응급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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