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낙선, 절망앞서 문학에 대한 오기가…|나의 신춘문예 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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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앙신춘문예에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던 73년 나는 시골중학교 국어교사였다. 신문사로부터 당선연락을 받던 순간, 그긴 교실 복도가 붕 떠보이는 듯 했던 감격이 요즘 새롭다. 요즘이야말로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에겐 가장 긴장된 고통으로 문학에의 열병을 앓고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건대, 그건 참으로 열병이었다. 69년 처음 신춘문예에 응모했던 나는 그후 해마다 찬바람 서늘히 불기 시작하면 가슴엔 수만가닥 가파르게 현이 감기고 피또한 내열로 하여 하루가 다르게 졸아붙는 고질적인 열병이 도지곤 했다. 점령군처럼 다가서는 동장군도 아랑곳없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작렬하는 꿈이었던가. 그 시절의 나는 젊을 뿐이었지 내 한몸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절망감에 깊이 빠져 살았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크게 말해 문학이, 작게 말해 신춘문예의 당선이 절망의 바다에서 내 자신을 구원하리라고 나는 믿었었다.
그러나, 11월에 나의 「썩지않는 새 동아줄」이었던 신춘문예는 12월 하순에 「썩은 헌 동아줄」이 되어 번번이 나를 더욱 막막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곤 했다.
나는 거듭거듭 낙선했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 낙선의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서 나는 더욱더 문학과 결별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엔 낙선할때마다 곧추서 솟구치는 오기 때문에 그랬고, 나중엔 그 오기가 문학에의 열정속에 나를 더 단단히 밀어넣는 바람에 그랬다.
오냐. 당선이 되든 안되든 평생 이것과 한번 맞씨름을 해보자. 나는 마침내 그렇게 생각했고, 신춘문예에 응모를 시작하고나서 다섯번째 되던해 당선됐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작가」라고 불렀고 「작가」라는 이름은 내 나머지 인생의 몸주가 되었다. 하지만 그 무렵이야 어찌 짐작이나 했으랴. 당선되면서부터가 사실은 문학에의 길고 힘겨운 도정의 시작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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