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강경화 인준, 문 대통령 국회연설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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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 3인의 신세가 딱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고위 공무원 배제 사유로 공약한 '5대 비리'에 묶여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난감한 이가 강 후보다. 두 김 후보는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조건부로 통과시킬 여지를 남겨놓은 반면 강 후보만은 '부적격'으로 못 박아 청문보고서 채택이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이다.

강 후보는 최초의 여성 외교장관 후보로 기대를 모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위장 전입·논문표절·자녀 탈세 등 갖가지 의혹에 거짓말 논란까지 추가된 데다 청문회에서 그런 흠결을 덮을 정책 능력을 보여주지도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나라가 미증유의 외교·안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이는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업고 정면 돌파하겠다는 속내를 비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여성단체에 이어 전직 외교장관들이 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점을 강조하며 임명을 강행할 분위기다. 그러나 이는 소탐대실이다. 야당의 극한 반발을 불러 앞으로 이어질 장관 청문회와 추경 등 핵심 어젠다들이 줄줄이 좌초할 공산이 크다.

문 대통령에게 달렸다. 오늘(12일) 국회 시정 연설이 분수령이 돼야 한다. 우선 자신이 공약한 5대 인사 배제 사유가 비현실적 목표였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이어 야당에 "현실에 맞는 합리적인 인사 기준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해야 할 것이다. 강 후보에 대해서도 인준 협조를 요구하기에 앞서 그가 북핵·사드 등 핵심 사안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해 야당의 의구심을 풀어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소통과 협치를 외쳐왔다. 소통과 협치는 대통령이 편하고 유리한 대목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야당에 도움을 요청할 때 진정성이 입증된다. 문 대통령이 진심 어린 호소로 손을 내밀면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본인의 패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냉정한 판단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