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세수하듯 마음도 닦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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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29면

삶과 믿음 

오래 전 노인대학에 강의를 간 적이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몇몇 어르신들과 함께 차를 마셨다. 그중에 멋쟁이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주위 분들은 이 할머니를 두고 지금도 건강하게 큰 사업을 하시는 재산가라고 하셨다. 한 할머니가 부러운 듯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걸 다 가졌으니 부러울 것이 없지”라고 말하자 그 할머니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셨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어, 마음이 편해야지.”

처음 교회에 나오는 분들에게 교회를 찾은 동기를 여쭈면 십중팔구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무리 부유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 명예를 누려도 마음이 불안하고 평화롭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새 신자들은 나이 어린 학생부터 구순의 노신사까지, 남녀노소할 것 없이 그 연령도 직업도 매우 다양하다.

그리스·페르시아·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은 더 이상 정복할 수 있는 나라가 없어서 슬피 울었다고 한다. 이렇듯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이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도 쉽지 않다. 인생의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온몸과 정신이 흐려진다.
반대로 마음이 기쁘면 온몸이 날 듯이 가벼워진다. 성경에서 “마음이 편안하면 몸에 생기가 돌고 마음이 타면 뼛속이 썩는다”(잠언 14, 30)고 했다. 구상(具常, 1919~2004) 시인은 ‘마음의 구멍’이란 시에서 마음의 무한한 의미와 신비로움을 노래했다.

“내 마음 저 깊이 어디/ 한 구멍이 뚫려 있어/ 저 허공과/ 아니 저 무한과/ 저 영원과 맞닿아서 (중략) 온 세상 모든 것이/ 제자리서 제 모습을 하고/ 총총한 별이 되어 빛을 뿜으며/ 나는 나의 불멸을 실감하면서/ 삶의 덧없음이 오히려 소중해지며/ 더없이 행복하구나”

모든 종교의 근본적인 역할도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아닐까. 마음의 상태는 우선 우리의 건강과도 직결된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에 쌓여 있으면 몸에 적신호가 생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까? 학창 시절, 나의 담임 선생님은 매일 세수하듯 마음도 닦으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당시는 무심코 흘려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말씀은 두고두고 새겨야 할 큰 가르침이었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보고 싶지 않은 우리의 욕심과 위선과 기만, 이기심을 보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닦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그만큼 맑고 밝아질 것이다. 매일 마음을 깨끗하게 닦자. 그러면 우리도 어느 날 구상 시인처럼 내 마음이 영원과 맞닿는 구원의 체험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성철 스님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 중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허영엽 신부
천주교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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