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등엔 관여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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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아무튼 그해봄 정치는 내내 불안정했다. 정부·여당이 구심점을 만들어 내지 못했고 큰 흐름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고 있는 듯한 기류가 그런 불안정의 배경이기도 했다.
야당권의 두 김씨는 그날 그런정세에 대해 비교적 솔직한 의견교환을 했다고 했다.
회담에서 군부나 유신체제의 중심세력들에 대한 문제는 김대중씨가 먼저 제기했다고 한다. 그 무렵 떠돌던 이런 저런 소문들을 얘기했다.
김영삼총재는 이런 소문과 관련해 두사람은 얼마간 차이는 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는 차이가 아니라는 견해를 표시했다고 했다.
그런 끝에 두김씨는 야당에 대한 불신이나 불안을 해소하고 극복하기 위해 둘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신민당의 지명대회에서 둘이 표대결을 않는다는 합의는 이런 시국인식이 바탕이 되어있었다.
이제 김대중씨의 입당여부는 4월7일 하오로 예정된 신민당 중앙상위결의가 열쇠가 될듯했다.
그랬는데 결말은 훨씬 빨리 내려졌다. 김대중씨는 신민당중앙상위가 열리기 직전인 7일 상오 신민당 입당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입당포기 이유를 이같이 말했다.
『내가 신민당이 재야에 문호를 열어야 한다고 말한것은 ①민주진영의 단합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②신민당의 수권태세를 강화하며 ③재야중심의 신당을 미리 막자는 목적에서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5일 신민당정무회의 결의를 보고 신민당이 재야인사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다는 판단을 갖게 되었으며 따라서 입당교섭을 포기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대통령후보를 투표없이 결정하겠다면서 재야인사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왜 제한해야하는가. 유신체제와 싸워온 재야인사를 신민당이 무슨 자격으로 어떻게 심사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신민당이 재야인사를 받아들일 적극적인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게된 이상 입당교섭을 포기하는것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내용.
김총재측에서는 이것을 이해할수없는 일이라고 했다. 당초 김대중계에서 요구한대로 재야인사를 1백명선 이상 받아들이도록 했고 자격심사위원회를 둔것 역시 동교동쪽에서 제안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엇갈리는 주장이 말하듯 문제는 신민당의 재야처우와 문호개방이었다. 재야의 문제는 사실은 따지고 보면 신민당의 대통령후보지명전 경쟁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무렵에도 김영삼총재는 신민당의 집권이 역사의 순리라고 했다. 그의 지방 나들이 때면 지지자들은 「민심도 김영삼 천심도 김영삼」이라는 피킷으로 환영했다. 김대중씨는 자택을 집단방문하는 지지자들에게 연설하면서 『지난73년 현해탄을 건널때 수중고혼이 될뻔했던때 기도를 통해 구원받았다』면서 『하느님이 나라와 겨레를 위한 당신의 도구로 나를 쓰시려는 섭리』라는 말을 그때도 빼놓지 않았다.
이런 두 사람의 지명전 경쟁에서 김영삼총재는 당권을 활용했고 김대중씨는 재야를 배경으로 신민당을 공략했다. 문제는 신민당이 재야에 지명대회대의원 몇자리를 주느냐는데 있었다.
김대중계의 이용희의원은 재야에서 투쟁해온 변호사 학계 언론계, 그리고 석방자들이 1백명도 넘는다면서 이들에게 중앙상무위원 이상의 자리를 주어야한다고 했다.
김영삼씨측 최형우의원은 재야인사중 정당에 참여할 사람은 많지 않으며 재야가운데도 민청학련관계자등 상당수는 김총재측을 통해 신민당 참여의 뜻을 밝히고 있다고 했다.
후보단일화 추진그룹은 처음 절충안으로 신민당이 재야를 위해 남겨놓은 상무위원 이상의 자리 36석을 모두 김대중씨와 함께 입당하는 재야에 넘겨주자는 의견이었다.
김대중씨가 승복할수 없다고 말한 정무회의 결의는 단일화추진그룹의 절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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