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 1주년 맞은 미술사학자 오주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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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 5일 경기도 파주 '바다의 별' 공원에 있는 오주석(1956~2005.사진)의 묘 앞에 막 인쇄된 유고 신간을 포함한 세 권의 책을 올려놓고 조촐한 1주년 추모식을 가졌다. 한 권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솔), 또 한 권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신구문화사).

그는 생전에 '단원 김홍도'(열화당)와 '한국의 미 특강'(솔)등 많은 미술사 책을 펴냈다. 앞으로 했어야 할 일을 생각해보면, 그가 49세에 타계하기 전 이룩해 놓은 것은 너무나 미미한 것이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술사학은 오랜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작품을 항상 세밀히 관찰하려고 노력했고, 문헌조사와 작품의 관찰은 균형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그 결과 오주석은 우리가 몰랐던 것, 잘못 알고 있었던 것, 지나쳤던 것들을 밝혀 놓았다. 그런 목적으로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옛 그림읽기의 즐거움' 시리즈. 그러나 그는 민영익의 '노근묵란도'등 17개 작품을 해석하는데 그쳤다. 나는 그가 장차 100편의 작품을 해석한다면 우리 회화사 연구에 큰 획을 긋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는 김홍도.이인문 등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문헌에서 찾아내는 한편 작품 자체에서 우리의 조형세계를 추체험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과정에서 겸재의 걸작'인왕제색도'가 언제 어느 날 그려졌는지를 정확하게 밝혔다. 겸재의 60년 지기(知己)인 시인 이병연이 1751년 윤5월 29일 유명을 달리하기 나흘 전 겸재는 그의 죽음을 예감하고 참담한 마음을 그림으로 남긴 것임을 규명했다.

또 윤두서의 '진단타려도'에서, 도인인 진단이 나귀를 타고 가다가 조강윤이란 걸출한 인물이 송(宋)이란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좋아한 나머지 안장에서 미끌어 떨어지면서도 "천하가 이제 안정되리라"고 외쳤다는 옛일을 그려서 숙종에게 바쳤음을 규명했다. 단원의 풍속도를 세밀히 분석해 그 많은 스토리들을 들춰낸 것, 겸재의 '금강산전도'를 주역으로 풀어낸 것도 그의 공헌이었다. 그는 우리 회화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자 어느 경우든 마다않고 강연을 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회화의 본질에 접하고 즐거워하게 된 것도 그의 공이다.

그의 조선 회화 해석은 일본 학자들의 깊은 관심을 끌었다. 우리 미술가의 국제적 경쟁력은 매우 약한 편인데,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그 시점에 타계했기에 그의 죽음은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의 서두에 그가 했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그가 남기고 간 것이 너무도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가 열어 놓은 회화연구의 새 가능성을 계승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강우방 <이화여대 초빙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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