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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서 세계화를 배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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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영국 런던 아스날 축구팀의 경우 코치는 프랑스 출신이고 선수들은 주로 외국인이다. 주장인 티에리 앙리는 프랑스인이다. 이탈리아의 AC밀란 주장으로 뛰고 있는 안드레이 셰브첸코는 우크라이나인이다. 이탈리아 인터 밀란의 주장인 크리스티아노 자네티는 아르헨티나 사람이다. 이들 외에 상당수의 남미.아프리카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고 있다.

축구만큼 노동의 세계화를 제대로 이룬 분야도 드물다. 일부 공산국가를 빼고 축구 선수의 이적을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 한 게임에 외국인 선수 2명 이상이 뛸 수 없다는 유럽의 규정은 사라졌다.

세계화와 완전한 상업화가 이뤄진 곳에서는 당연히 최고의 성과가 나오게 돼 있다. 유럽 챔피언스 리그의 8강에 든 축구 클럽의 숫자는 1967~86년 28~30팀이었으나 이 숫자는 차츰 줄어 2000~2004년에는 21팀이었다. 소수의 축구팀이 엘리트팀이 된 것이다.

국내 리그도 마찬가지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92년 이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 또는 첼시가 이기지 않은 경우는 한 번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에선 91년 세리에 A 챔피언십이 시작된 이후 두 번만 빼고는 유벤투스 아니면 AC밀란이 이겼다. 스페인에서는 85년 이래 세 번을 제외하고는 항상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승리했다.

부유한 축구 클럽에 최고 선수가 몰리다 보니 게임의 질도 좋아졌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규모의 이익'이다. 실력이 탁월한 선수들이 함께 뛰면 선수들의 실력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 팀 전체의 잠재력도 향상된다는 얘기다.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은 다른 분야에서도 같은 결과를 낼 것이다. 하지만 인재는 갈수록 선진국으로 몰릴 것이다. 그럴 경우 가난하고 작은 나라가 유럽 챔피언십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갈수록 작아질지 모른다.

클럽 축구에서는 불평등이 나타났지만 국가 간 경기에서는 반대 현상도 노출됐다. 월드컵 상위 8개 팀 간의 평균 득점 차는 조금씩 주는 추세다. 50년대 2골, 60~80년대는 1.5골, 2002년 월드컵에서는 0.88골이었다. 주목할 만한 건 최근 월드컵 본선 참가팀의 상당수가 신생 강팀이었고, 이들이 결코 전통적인 강팀에 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2년 한국이나 터키가 그랬듯 지난 네 차례의 월드컵 경기에서 8강에 진출한 팀 가운데 두 팀 정도는 이전에 단 한 번도 8강에 못 올랐던 팀이다.

그 까닭은 뭘까. 첫째, 자유로운 이적으로 강팀에서 뛴 경험을 쌓은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됐기 때문이다. 둘째, 국가 간 경기의 경우 선수들은 모국을 위해서만 뛰어야 한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 덕분이다. 이는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선진국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되 거기서 5년을 일할 경우 1년은 고국에서 일하도록 하는 국제적인 규칙을 만들면 어떨까. 축구선수인 에토와 에시앙.메시 등이 고국인 카메룬.가나.아르헨티나의 축구 수준을 향상시킨 것처럼 다른 분야에서도 인력의 이동을 통해 선진국의 기술이 후진국으로 이전되는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세계가 축구에서 배워야 하는 건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브랑코 밀라노빅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