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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민간에 투자 위탁 땐 의결권까지 맡길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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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기업 경영에 대한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연금 규모와 주식 투자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초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285개에 달한다. 5년 전과 견줘 64개(28.96%) 늘었다. 이 중 지분율이 10% 이상인 곳도 76개에 달한다. 10대 그룹만 봐도 상장사 10곳 중 7곳의 국민연금 지분율이 5%를 넘는다. 이미 국민연금의 찬반에 따라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이 좌우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재계에서 “국민연금 투자가 자칫 연금사회주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분 5% 이상 가진 상장사만 285곳 #기업 경영 좌우 ‘연금사회주의’ 논란 #일본처럼 신탁형 외부 투자 늘리면 #논란 없애고 책임성 높일 수 있어

물론 아직은 기우에 가깝다. 대기업 총수 개인의 지분이 적더라도 계열사가 출자한 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합하면 국민연금 지분을 넘어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논란은 앞으로 증폭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적립액이 급속히 증가하고 현재 18.4%인 국내 증시 투자 비중도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그렇다고 해외 투자나 채권 투자를 크게 늘리기도 어려운 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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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피할 대안은 ‘신탁형 외부 위탁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국내 증시 투자자금의 절반을 기금운용본부를 통해 직접 운용한다. 나머지 절반은 자산운용사 등 외부 기관투자가에 일임 투자 방식으로 맡기고 있다. 알아서 투자하도록 하되 사후 수익률을 평가해 운용사를 교체한다. 하지만 의결권은 여전히 국민연금의 몫이다. 누가 자금을 굴리든 결정적일 때 기업과 시장이 바라보는 건 국민연금이 될 수밖에 없다.

‘신탁형 투자’는 의결권까지 아예 운용사에 맡기는 것이다. 일본 연기금들이 하는 방식이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연기금 역시 일임·자문 등 투자 형식과 상관없이 운용사가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한다. 이러면 외부에 위탁하는 비율만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부담이 덜어진다. 보다 합리적인 투자도 가능해진다. 돈을 맡긴 국민연금보다 운용사가 투자 회사를 더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신탁형 투자는 연금사회주의 논란을 자연스레 없애면서 국민연금과 운용사의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며 “일임 투자 때 의결권까지 맡길 수 있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