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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대통령, ‘미래에서 온 투표’에 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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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사회2부 부데스크

김승현사회2부 부데스크

“제 엄마가 잘 못 쉬십니다. 우리 엄마 좀 쉬게 해주세요.”

부모의 코끝을 찡하게 하는 글이다. 다음 문장은 가슴이 아리다. “그러면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삐뚤빼뚤 쓴 짤막한 편지글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라는 NPO(비영리단체)가 아동과 청소년 8600여 명으로부터 받은 의견 중 하나다.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글은 후보들에게 전달됐다. 재단은 이 편지를 ‘미래에서 온 투표’라고 부른다. 중앙일보 4월 27일자(22, 23면)에 보도된 ‘미래 유권자’들의 제안은 어른들의 폐부를 찌른다. 순도 100%의 돌직구다.

“학교 주변에 가로등을 설치해 주세요. 왜냐하면 학교 앞을 지나갈 때 어둡고 무서워서요.”

“어린이임에도 불구하고 학용품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빼앗은 근로 시스템을,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는 학교와 지역사회를 질타했다. 어린이 소비자로서 이해하기 힘든 시장경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공부 시간을 줄여 달라’ ‘아동폭력을 막아달라’는 요청이 가장 많았지만, 언니·오빠들의 취업 문제를 걱정하기도 했다.

이들의 돌직구는 불과 몇 년 뒤 ‘페이퍼 스톤’(투표를 이르는 은유적 표현)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그들의 요구가 ‘현재 유권자’인 어른들의 바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대선후보가 되고 나서야 뒤늦게 벼락치기 공부로 암기할 일이 아니다.

“놀이터가 없다” “발전되지 못한 지역에 돈을 써달라” “진로 상담을 받고 싶다”는 평범한 요청에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는 어른들은 미안하기만 하다. 부모들에겐 아이들의 바람에 답을 찾아주는 게 정치다. 어느 대선후보가 자서전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서 자문자답한 것처럼, 보통의 어른들이 ‘나는 왜 투표를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그 답의 십중팔구는 ‘아이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나온 ‘출산절벽’ 통계는 한국 정치의 완벽한 실패를 의미한다. 올해 태어나는 신생아 수가 36만 명 선으로 떨어져 30만 명대에 접어든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1996년 60만 명대에서 2001년 50만 명대, 2002년 40만 명대로 추락한 지 15년 만에 다시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20여 년 동안 아이들을 위한 투표는 실패했고, 면목도 자신감도 없어진 어른들은 차라리 아이를 포기하고 있다. 19대 대선후보들에게도 이 추락을 저지할 능력은 없어 보인다. 다만 ‘미래에서 온 투표’가 현실이 될 즈음에라도 그 답이 찾아지길 바랄 뿐이다. 쉬지 못하는 엄마를 오히려 걱정하고 있는 아이의 목소리에 미래의 대통령 후보들이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김승현 사회2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