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2차 TV토론] 홍 ‘설거지는 여자 몫’ 발언 사과 심 “스트롱맨이라더니 나이롱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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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빈 종이와 볼펜 한 자루, 목을 축일 물 한 잔.

120분간 아무도 의자 안 앉아

19일 최초의 ‘스탠딩 토론’ 형식의 대통령 후보 토론회장에 들어선 5명 후보들의 연단에 놓인 것들이다. 사전에 준비해 줄줄 읽었던 두꺼운 예상 모범답안도, 참고할 만한 자료도 없이 맞붙은 ‘백병전(白兵戰)’이자 난상토론이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안철수 국민의당·홍준표 자유한국당·유승민 바른정당·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 5명은 120분에 달한 KBS 토론회 내내 선 채로 토론에 임했다. 질문을 받지 않는 동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지만 아무도 걸터앉지 않았다.

정치·외교안보 분야의 토론에서 여론지지율 1~2위인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사실상 방어만 하다 끝났다. 새로운 토론 형식 때문이었다. 사전에 문답 시간이 정해졌던 기존의 토론과 달리, 순서 없이 질문과 답변을 합해 9분의 총량만 정해 놓으면서 집중 공격을 받은 문·안 두 후보는 거의 답변만 하다 시간을 다 썼다.

홍준표·유승민 등 구여권 후보들은 안보 이슈 등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유 후보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에 앞서 북한의 의견을 물어봤다는 의혹 등을 문 후보에게 여러 차례 물었다. 홍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 640만 달러를 안 받았으면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 지도자는 막말이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을 안해야 한다”고 했다. 홍 후보는 안 후보에게도 “박지원 대표는 대북송금을 한 친북인사다. 시중에선 안 후보가 대통령 되면 대북정책은 박지원씨가 대통령이라고 한다”며 안보관을 문제 삼았다.

문·안 두 후보가 발언 기회를 잃은 뒤 홍 후보는 홀로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그러다 유승민 후보가 홍 후보를 몰아붙이자 “주적은 저기(문재인)”라며 “꼭 이정희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타 후보들을 몰아붙이던 홍 후보는 그러나 결국 사과해야 했다. 18일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일” “남녀는 태어날 때부터 역할이 정해진다. 나는 집에서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고 했던 발언을 두고서다. “설거지가 여성 몫이라는 주장은 여성비하다”(안철수), “라면도 끓일 줄 모르고 설거지도 안 하는 그런 것이 스트롱맨인가”(유승민), “여성을 종으로 보지 않으면 그런 말 할 수 없다”(심상정)란 비판이 쏟아졌다. 홍 후보는 “웃으라고 했던 얘기였다”고 했다가 결국 “말이 잘못됐다면 사과하겠다”고 했다. 무상급식을 두고 유 후보가 “홍 후보가 무상급식에 대해 말을 바꿨다”고 꼬집자 심상정 후보는 “(홍 후보 스스로) 스트롱맨이라더니 나이롱맨이었다”고 거들었다.

안 후보는 선거포스터에서 당명을 뺀 게 “일부러 숨긴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포스터 70%를 초록색이 차지하고 있다. 당 마크도 있고 국민도 있다. 나이키를 나이키라고 쓰냐”고 했다.

2시간 여 후 KBS를 떠나며 문 후보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응답하는 게 무슨 스탠딩 토론인지 잘 모르겠다. 한 후보에게 (질문이) 집중되면 충분히 토론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고 말했다. 안 후보는 “새로운 형식이 신선했다. 회를 거듭할 수록 흥미진진해질 것”이라 고 평가했다. 홍 후보는 “두 시간 세워놓으니 무릎이 아프다. 체력장 테스트도 아니고…”라고 했다.

강태화·정종훈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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