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AI와 비교할 수 없이 섬세한 인간 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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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능의 탄생
이대열 지음, 바다출판사

320쪽, 1만8000원

지난해 알파고 등장 이후 인공지능(AI)이나 인공신경망이 시대의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사람이 AI를 ‘고도화된 뇌’로 여긴다. 끝없이 발달하다 보면 지금의 내 일터나 미래의 내 자녀 일자리를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넘친다. 하지만 미국 예일대 신경과학과 석좌교수인 지은이는 이런 고민을 ‘AI에 대한 억측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뇌를 ‘연산하는 기계’로 좁게 봤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는 것이다. 현재의 AI는 데이터를 축적·기억·계산하는 능력만 뛰어날 뿐 인간 지능이 갖고 있는 깊이나 넓이, 그리고 진화능력은 결여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뇌는 실로 다채로운 기능을 가졌다. 뇌가 수행하는 인간의 사고를 흔히 이성과 감성으로 대변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작된 서양철학적 접근법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 능력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현대 신경과학·뇌과학의 연구 결과 이성과 감성 외에도 추론·예측·직관·통찰과 같은 다양한 요소가 인간사고 과정을 이루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모와 청소년이 과도한 관심이 있는 지능도 사실 인간사고 과정의 한 부분으로, 특히 문제해결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중요한 것은 지능과 지능지수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지능지수는 수와 도형을 조작하는 능력인데, 측정해서 수치로 환산할 수 있다. 한낱 시험결과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지능지수가 높다고 더 지능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이대열 교수는 “AI의 미래와 한계를 예측하려면 인간 지능에 대한 통찰이 선행돼야 한다” 고 말했다.

이대열 교수는 “AI의 미래와 한계를 예측하려면 인간 지능에 대한 통찰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지능은 전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포괄한다. 다양한 환경에서 복잡한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단순히 논리적인 결정과정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뭔가를 선택하는 능력이다. 예로 연인의 생일에 저녁을 함께 먹는다 치자. 시간 들이지 않고 가깝고 예약이 쉬운 식당에서 평소보다 비싼 고기를 구워 먹는다면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의 똑똑한 행동이다. 반면 밤새 인터넷을 뒤져 상대방이 가장 기뻐하고 만족스러워하며 기억해줄 만한 식당을 찾아 결코 잊지 못할 특별 메뉴를 선보인다면 장래에 이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지능이 높은 사람의 영리한 행동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한 이런 능력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에도 있다. 심지어 대장균도 먹이가 되는 화학물질이 많은 쪽으로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빛이 많거나 따뜻한 쪽으로 식물의 가지가 굽는 것도 마찬가지다. 복잡하게 발달한 동물의 신경계도 생존을 위한 반사행동에 근원을 두고 있다. 지능을 가장 성공적으로 활용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지능 탐구가 인간 이해로 직결되는 이유다.

생명체의 기능인 지능은 진화하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복제를 하는데, 원본보다 더 뛰어난 복사본이 진화과정에서 등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AI는 인간이 이미 선택한 것을 인간 대신 반복 수행하는 데 그치기 때문에 참다운 의미의 지능이라고 할 수 없다. AI의 미래와 한계를 예측하려면 인간 지능에 대한 통찰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은이의 이런 지적이 울림을 준다. 지은이는 한국 태생으로 현재 의사결정 과정과 관련한 뇌의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S BOX]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눈동자가 위로 … 신경과 뇌의 진화 결과

인간의 생각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안구운동 하나만 봐도 여간 지능적인 게 아니다. 흔들리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사물이 희미해지지만 인간은 머리가 아무리 흔들려도 앞을 볼 수 있다. 흔들림을 감지하는 전정기관에서 받아들인 신호에 따라 뇌가 안구근육을 100분의 1초 단위로 조절하기 때문이다. 신경과 뇌의 진화 결과다. 보는 대상이 움직이면 눈동자가 따라서 이동하는 시운동반사, 시야를 확확 바꾸는 도약안구운동, 움직이는 물체를 따라가며 응시하는 추적안구운동 등으로 인간은 외부 정보를 정교하게 파악한다.

신경과 뇌의 이런 기능은 지능적 삶과 직결된다. 낯선 집에 들어가면 눈동자를 재빨리 움직여 집안의 경제·문화 수준을 파악한다. 보스나 선배 등 위계질서가 높은 상대를 만나면 눈동자를 아래로 깐다. 일부 영장류에서도 발견되는 습관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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