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봉으로 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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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필리핀에서 한국인 근로자 2명이 피랍됐다. 레바논에서 피랍됐던 도재승서기관이 21개월만에 풀려난지 며칠도 안돼 또 납치사건이 발생했으니 어이가 없다.
이번 사건은 1년전에 필리핀에서 있었던 사건과 발생장소도 똑같고 피해자도 똑같은 한일개발소속이며 납치범들도 똑같은 신인민군(NPA)소속으로 알려졌다.
납치범들은 같이 납치해갔던 필리핀 근로자들을 석방하면서 『한국인들은 안전하며 한국음식과 생필품을 2∼3일내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우선은 최성권·한배수 양씨가 신변엔 아무런 이상이 없다니 마음은 놓이지만 한·필리핀 양국정부와 회사측의 석방노력은 끈질기게 계속 되어야한다.
아직 납치동기가 확실히 밝혀진바는 없다. 범인들이 이번에도 「몸값」을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는 것을 보면 씁쓸한 생각이 든다.
필리핀에서 한국인 근로자가 납치된 것은 78년 박화춘씨 사건이래 이번이 4번째다. 과거 3번의 피랍 근로자들은 모두 무사히 풀려났지만 우리는 이번·사건을 계기로 해외진출 한국회사들이 자체경비와 직원들의 신변안전을 다시한번 철저히 점검하도록 당부한다.
국제테러는 정치적 동기가 아니면 몸값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필리핀 같이 정부군과 신인민군간의 대결이 지속되는 미묘한 지역에서는 정글속에 진출한 해외회사에 대해 「세금」을 걷거나 「취업」을 요구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1년전의 필리핀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1년전 박종수·정상기씨가 피랍됐을땐 정부군과 공산반군간에 휴전무드가 절정에 달했을때였지만 지금은 양쪽의 감정이 몹시 날카롭게 대립돼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또 납치사건이 날때 마다 우선 몸값만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방식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뻗어나는 우리 국력에 비례해서 한국인들은 지금 지구 구석구석에까지 진출, 활동하고 있다. 수백개가 넘는 테러집단들이 한국인을 납치하기만 하면 목돈이 생긴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봉이 아닌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의 주장과 입장을 떳떳이 밝히고 범인들을 설득하는 것이 또 다른 납치사건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범인들이 무고한 사람을 상대로한 납치, 테러행위는 그동기여하를 불문하고 온 인류의 규탄을 면치못할 것임을 자각하고 선량한 한국인 근로자 2명을 조속히, 그리고 무조건 석방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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