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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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권」을 겨냥한 정치열기속, 바람잘날 없는 난기류속에 3일 하오 중앙일보 편집국에 익명의 서울대생이 보낸 편지 한장이 날아들었다.
『지난달 28일자 중앙일보 10면촛불 「상처입은 두가정」이란 기사를 읽고 착찹한 마음을 금할길 없었습니다. 폭행당한 여중생이나 폭행을 저지른 남학생이나 모두 불쌍합니다. 특히 남학생은 피해자 아버지의 실수로 목숨까지 잃었으며, 그 책임은 부모·학교·사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물리학과 2학년 김익명」이라고 밝힌(?)이 학생은 지난 9일 서울 합정동한강고수부지에서 본드를 마신 뒤 길가던 여중생 이모양(14)을 집단 폭행했다가 여학생 아버지에게 맞아 입원 17일만에 숨진 김모군(15)사건에 대해 『서로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두 가정이 화해하길 빈다』며 숨진 김군가족에게 보내는 조의금으로 소액환 5만원을 동봉했다.
익명의 서울대생은 이 편지에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 없는 나이 어린 중학생이 오죽했으면 본드냄새를 맡으며 환각의 세계로 탈선했겠느냐』고 동정한 뒤 『다시는 제2의 김군·이양이 생기지 않는 사회,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하며, 우리가 민주화를 외치는 것도 결국 이런 목적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달 30일 벽제시립묘지에서 아들의 장례를 치렸다는 김군의 아버지 (46)는 서울대 김군의 위로편지에 대해 『아비된 도리로 뭐라고 말해야될지 막막하다. 이양이 하루바삐 악몽에서 벗어났으면 한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대학 리포트용지에 연필글씨로 또박또박 적어나간 김군의 편지가 화려한 원색인쇄로 찍혀 유세장마다 범람하는 대권주자들의 선거유인물보다 훨씬 반갑고 뭉클한 감동까지 주는 것은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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