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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200억 종착지 끝까지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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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현대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돈은 총선자금의 냄새가 물씬 난다. 받은 시점이 검찰 발표대로 2000년 3월이라면 16대 총선 1개월 전이다. 단순한 알선수재로 보기에는 2백억원이란 액수는 너무 크고, 전달 과정에 개입된 인사들의 진술로 볼 때 총선에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權씨가 현대 측으로부터 돈을 받아 민주당 후보들에게 지원했다 하더라도, 이미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 3년을 넘겼기 때문에 이들을 처벌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 조항을 들어 정치인 조사를 조심스러워 하는 기류도 있다니, 이 사건이 자칫 權씨의 개인비리로 흐지부지되지 않나 우려된다.

물론 이 사건을 계기로 검찰이 여당의 총선자금 전모를 조사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그렇지만 權씨가 받은 돈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그 사용처는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그것은 검찰의 선택문제가 아니라 의무다.

총선 당시 權씨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소문나거나 받았을 것으로 의심받는 민주당 의원들도 검찰 조사에 적극 응해야 한다. 검찰 수사를 거부할 경우 뭔가 뒤가 구린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지금 이들은 "權씨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자신들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검찰 조사에 불응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선거 때는 한 푼이 아쉽다. 그래서 당의 중진이 건네주는 선거자금을 출처를 따진 뒤 받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또 선거자금에 관한 한 자유로울 수 있는 정치인이 거의 없다는 것도 정치권의 상식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런 행위를 묵인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을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해방 후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현대사가 왜곡됐다고 한다면, 검찰이 權씨가 받았다는 돈의 종착지를 밝히지 않은 채 덮어버리는 것은 부패정치를 청산할 기회를 저버리는 행위다. 검찰은 낱낱이 밝히고, 해당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우리 정치가 검은 돈에 발목잡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