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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들의 어깨를 감싼 장인의 손바느질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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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호 26면

명품은 시대에 맞게 진화한다. 소비자들은 변화하지 못하는 디자인은 촌스럽다며 외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가 깊고 전통적인 이미지가 굳건한 브랜드일수록, 변화를 시도해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기존 고객의 기대와 새로운 고객의 요구를 모두 충족하며 유행을 선도하는 새로운 디자인까지 제시하는 일은, 그래서 명품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버버리 ‘더 케이프 리이매진드’ 전시 가보니

버버리는 150년 동안 이어져 온 갈색과 빨간색의 체크 패턴을 과감히 벗어 던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격을 선택한 버버리는 완전히 젊어졌다. 디자인뿐만 아니다. 다른 명품 하우스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10년 전, 가장 먼저 ‘디지털’을 선택했다. 럭셔리 브랜드로는 최초로 SNS(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에서 패션쇼 생중계를 시작했다.

버버리의 놀라운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9월에는 런웨이에 오른 모든 제품을 쇼가 끝난 직후 바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스트레이트 투 컨슈머(Straight-to-Consumer)’쇼를 공개했다. ‘좋아요 세대’의 패션피플들이 환호했음은 물론이다. 2017년 2월 컬렉션에서는 영국을 대표하는 조각가 헨리 무어(1898~1986)가 추구한 독창적인 작품의 단순하고도 추상적인 형태에서 내뿜는 원시적 에너지를 끌어들여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했다.

마스터피스 ‘케이프’ 월드투어, 첫 전시는 서울

‘속도는 빠르게, 감각은 젊게’ 변화에 성공한 버버리가 올 봄, 고객과 영감을 주고받는 특별한 전시 ‘버버리, 더 케이프 리이매진드(BURBERRY: THE CAPE REIMAGINED·3월 16~26일)’가 버버리 서울 플래그십에 마련됐다. 지난 2월 런던 메이커스 하우스에서 열린 ‘헨리 무어: 인스퍼레이션 & 프로세스’ 전시의 일부로 첫 선을 보였던 리미티드 에디션 케이프를 큐레이티드 버전으로 재해석한 제품들이다.

우선 월드 투어의 첫 전시 장소가 바로 서울이라는 점은 놀랍다. 패션이 아트를 동경해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을 진행하고 또 전시를 여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요즘, 버버리의 전시는 헨리 무어의 작품이 어떻게 버버리의 케이프에 녹아 들어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면에서 패션과 아트에 관심있는 많은 이들의 시선을 대번에 낚아챘다.

각각의 케이프는 독특한 공정과 버버리 아카이브의 요소들을 반영해 런던 아틀리에에서 수작업으로 완성됐다. 버버리 2017년 2월 컬렉션이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과 개인적인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만큼, 전시되는 케이프 역시 거기에서 출발했다.

목과 어깨를 풍성하게 감싸는 구조적인 형태와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극대화시킨 볼륨감, 장인의 손바느질이 느껴지는 수공예 기법으로 완성된 디자인 등 한 점 한 점이 모두 영혼을 쏟아 부은 듯한 마스터피스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각각의 케이프는 제작 기법에 따라 ‘더 퀼트(The Quilt)’, ‘더 자카드(The Jacquard)’, ‘더 디스크(The Disc)’, ‘더 레이스 플리트(The Lace Pleat)’ 등의 이름이 붙여졌다.

레이스 조각이 층층이 겹쳐진 ‘스캘럽트 레이스 (The Scalloped Lace)’

레이스 조각이 층층이 겹쳐진 ‘스캘럽트 레이스 (The Scalloped Lace)’

울 소재의 방울로 제작된 ‘폼폼(The Pom Pom)’

울 소재의 방울로 제작된 ‘폼폼(The Pom Pom)’

구슬세공 장식이 된 ‘스컬티드 숄더(The Sculpted Shoulder)’

구슬세공 장식이 된 ‘스컬티드 숄더(The Sculpted Shoulder)’

울 소재 방울로 구름같은 느낌

총 22점 중 돋보이는 작품을 꼽으라면, 부피감 있는 펠트 울 소재를 니트 공법으로 재해석해 클래식한 스웨터 케이프로 선보인 ‘디 아란(The Aran)’과 수작업 처리한 울 소재의 방울로 제작한 구름 모양의 케이프 ‘더 폼폼(The Pom Pom)’이다. 버버리의 상징인 트렌치 코트의 윗 부분만을 떼어서 그 자체로 독립적인 아이템으로 승화시킨 모양새다. 버버리의 우아한 색깔은 지키면서 엣지있는 디자인 감각이 돋보인다.

“버버리 케이프는 19세기부터 풍부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 버버리의 트렌치코트처럼, 처음엔 보호 기능을 위해 소개되었으나 훨씬 더 발전됐다. 2017년 2월 컬렉션을 위해 우리는 조각 형태와 어깨 실루엣을 보여주는 케이프 아이디어가 담긴 헨리 무어의 작품을 연결시켰다. 일흔여덟 개의 개성 있는 디자인은 각각 유니크한 컬렉터 피스로 장인들의 열정과 예술성을 반영해 뜻밖의 소재와 정교한 기법을 결합했다.”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CCO)이자 최고 경영자(CEO)인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말이다.

SNS세대에 맞게 새로운 디자인 정체성을 만들고자 디지털화를 선택한 버버리인 만큼, 혁신은 쇼와 매장을 바꾸는데 그치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런던에서 열리는 패션쇼를 실시간으로 관람하는 세상을 열더니, 유투브에서는 단편 영화를, 애플 뮤직에서는 버버리가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전시는 서울을 시작으로 밀라노와 상하이, LA, 두바이, 뉴욕, 홍콩 그리고 도쿄로 이어지며 도시마다 유니크한 케이프 셀렉션을 선보인다. 청담 사거리에 위치한 버버리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2층에서 26일까지 열린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2-6002-3200 ●

글 양윤정 패션 컬럼니스트 smurpatt@gmail.com,  사진 버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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