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씨가 먼저 돈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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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安大熙검사장)는 12일 소환한 이익치(李益治)전 현대증권 회장에게서 권노갑(權魯甲)전 민주당 고문이 2000년 4.13 총선 직전 현대 쪽에 먼저 자금 지원을 요구해 1백억원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李씨는 검찰에서 "총선 직전 서울 S호텔에서 權씨와 나,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회장, 전직 무기거래상 김영완(金榮浣)씨 등 네 명이 만나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權고문이 먼저 '(총선 자금이 필요하니) 도와달라'고 해 며칠 뒤 현금 1백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고 검찰 관계자는 밝혔다. 李씨는 또 "당시 鄭회장의 지시로 계열사에서 조성한 비자금 중 일부를 김영완씨를 통해 權씨에게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정몽헌 회장(지난 4일 자살)에 대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현대상선이 총선 한달쯤 전인 2000년 3월께 해외 거래처에 1백여차례 화물 용선료 등으로 돈을 보낸 것처럼 전표를 꾸미는 수법으로 비자금 2백억원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 이 돈의 일부가 權씨에게 건네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특히 權씨가 현대 측에 대가를 제공한 혐의를 집중 추궁, 13일 중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했다.

검찰은 鄭전회장이 당시 權씨에게 ▶현대그룹 내 후계자 다툼인 '왕자의 난'에서 도와주거나▶현대상선에 대한 특혜 대출에 압력을 행사해 주는 대가로 돈을 줬을 것으로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특히 權씨에게 전달된 현대 자금의 일부가 당시 여권의 또 다른 실세인 K.Y.C씨 등에게 전달된 단서도 포착해 집중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날 오전 權씨의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과 權씨의 비서 文모씨 자택 등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 예금통장과 전화번호부 등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이에 앞서 검찰은 지난달 22일 權씨를 출국금지 조치했다.

조강수.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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