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출판|「선거서적」시중에 70여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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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6월 이후 이 땅에 불어닥친 민주화바람과 그 바람의 무게중심을 형성한 선거정국의 흐름을 가장 빠르고 민감하게 반영한 분야는 출판이다. 6·29이후 급격한 정치사회적 변화는 그 변화의 변수마다 일정한 함수관계를 맺는 출판현상을 야기시켰으며 특히 12월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를 앞둔 최근의 출판계는 다양한 형식의 출판물을 통해 유세장 못지 않은「말의 홍수」를 경험하고 있다.
이같은 종류의 출판물들은▲1노3김으로 대별되는 대통령후보관련서적(이하 선거서적)▲특정후보 지지차원을 떠나 6월 이후 드러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선거정국에 반영시키고자하는 서적(이하 민주화서적)으로 크게 나뉘어진다.
「선거서적」은 당초 6·29직후 김대중·김영삼씨의 민주화투쟁 경력과 정치적 수난을 내용으로 하는 비교적 순수한 책들로 출발했다. 그러나 두 김씨가 후보단일화에 실패하고 1노3김의 4파전이 시작되면서 여론 및 유권자들을 겨냥한 선전용 서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대중씨의 경우 김씨가 직접 쓴『대중경제론』『행동하는 양심으로』등을 비롯,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씌어진 책 등은 모두 20여종. 김영삼씨 관련서적은『새벽을 열며, 김영삼 총재의 단식투쟁』『민주화의 횃불 김영삼』등 10여종, 노태우씨는『노태우 선언과 세계언론』『노태우 그는 누구인가, 연희동의 새출발』등 3종, 김종필씨는『내가 본 김종필』『새 역사의 고동』등 4종이 나와있다.
이같은 선거서적범람을 틈타『3K와 노태우』『불붙은 4파전』등 대권경쟁 및 선거전략, 선거비사 등을 다룬 서적들까지 상업성을 띠고 쏟아지고 있으며, 조세형·이 철·손주항·예춘호·김동영·이종찬씨 등 전·현직국회의원들까지 내년 봄 국회의원선거를 겨냥해 미리부터 선거서적 출판경쟁에 뛰어듦으로써 현재까지 시중에 나와있는「선거서적」은 무려 70여종에 이른다.
이같은 선거서적의 범람은 종전까지 팸플릿·전단 등이 갖고 있었던 선전기능이 책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하며, 심지어『유세의 현장』이라는 책을 퍼낸「한국선거전략문제연구소」 에서는 개인홍보책자를 편집·제작해준다는 광고문안까지 책 뒤에 싣고 있다.
그러나 이들 선거서적들은 후보자들에 대한 지나친 미화,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의 반복, 제목만 그럴듯한 눈속임 비사등으로 인해 독자들의 식상감을 유발, 냉담한 반응을 얻고있다.
종로서적과 교보문고의 경우 이들 7O여종의 전체판매량이 하루 50∼1백부선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들 선거서적은 일반독자들에게 갈수록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대신 후보자들의 배포용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많다.
이에 비해「민주화서적」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에는 관심이 없는 대신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민주화는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선거정국 속에 반영되어야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 서적은▲6월 이후 우리사회의 흐름과 앞으로의 민주화진로를 탐색하는『기사연리포트』『전환』등 4∼5종의 무크지▲최근 금서에서 풀려난 해금도서들을 포함한 반독재 체제비판서적▲필리핀·칠레·스페인 등 외국의 군정종식사례를 소개한 20여종의 번역서▲8월 노사분규를 정점으로 쏟아져 나온 노동자·농민 등의 민중운동서적 등 다양하다.
이같은「민주화 서적」은「선거서적」과는 달리「특정개인」이 아니라「사회성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지식인등 특정 독자층만을 형성하는 한계를 안고있는 것으로 자체 진단되고 있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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