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당창업…국내 최고 출판사「동명사」80주년|전신은 「신문관」…해방후 아들 최한웅박사가 운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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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인 동명사가 11월1일로 창업80주년을 맞는다. 청진동245번지. 대양이 서목으로 기우는 오후면 교보빌딩의 거대한 그림자 속으로 3층건물 전부가 들어앉는 동명사. 그러나 좁은 층계를 올라 2층 사무실 문을 열면 뚫어지 듯 쏘아보는 육당 최남선의 초상화가 위압적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한국신문학의 선구자 육당이 타계한지 올해로 30년째라는 사실과 함께 그의 동명사가 지금까지 이곳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선친께서 동명사의 전신인 신문관을 설립 하신것이 1907년…』 오늘의 동명사를 지키고있는 육당의 둘째아들 최한웅 박사의 눈가에 얼 핏 뜨거운 회한의 빛이 떠오른다.
지난 83년 서울대의대 소아과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그도 어느덧 70세다.『당연히 가업을 이어야지요. 저는 육당의 아들 아닙니까』
육당이 17세의 나이로 신문관을 설립하게된 것은 일본유학시절 와세다대학에서 있은「조선합정 모의국회」에서 느낀 분노 때문이었다고 최박사는 전한다. 청년 육당은 당시 약재업을 하던 조부로부터 일본황실이 이왕가에게 준 내탕금의 두배에 가까운 거금 17만원을 건네받아 신문화의 산실인 신문관을 세웠으니 그곳이 지금의 을지로 외환은행본점 건너편 자리다.
이듬해인 1908년11월1일 (현재 잡지의날) 이곳에서『소년』잡지가 창간됐고 이어『붉은 저고리』『아이들보이』『청춘』등의 잡지와 지금의 문고본에 해당하는 육전소세등을 퍼냈다. 이와함께 조선광문회를 설립, 국학연구에 힘쓰던 육당은 년 신문관을 동명사로 개칭하고 우리나라 최초의종합주간지를 만드니 그것이 닭이 우는 그림표지를 단 『동명』 이었다.
최박사가 육당의 뜻에따라 동명사블 맡게된것은 해방직후였고 그때부터 의학과 출판이라는 두길을 걷게되었다.전쟁전까지 금윤경의『나라말본』,금구의 『백범일지』등을 츨간해온 동명사는 50년대들어서면서 이공계통 전문서적출판사로 변모했지만 육당의 정신을 보존하려는 최박사의 집념은 학자80명이 동원된 두권의 역저, 즉 77년 창업7O주년기념으로 펴낸 『한국철학연구』(전3권)와 올해5월 창업80주년기념으로 퍼낸『한국철학사』(전3권)로 이어지고있다.『지난 80년동안 펴낸책이 1천여종, 그중 4백여종이 살아 있어요. 동명사의 저자만도 교수 8백여명에 이릅니다.』
전쟁·화재등으로 좌절하기도 5∼6차례. 지금의 청진동사옥은 76년부터 쓰고 있다. 매년 적자만 내는 출판사업에 가산도 다 날려 버렸지만 동명사 2층에 마련된 육당전집등 선친의 기념물등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최박사의 노구엔 힘이 솟는다.
그는 지난해 가을「우노가 적셔주는 대로, 혹은 태양이 내리 쬐는데로」울고 웃으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용헌잡기』라는 회고록으로 펴냈다.
『자식들에게 미전보다 긍지와 정신을 물려 주어야지요. 아들 국주도 지금의사로 일하고 있지만 제가 눈을 감으면 가업을 이을겁니다』30일 프레스센터에서 있을 제3회 육당시조시문학가(수상자 고두동) 시상식을 앞둔 최박사의 얼굴이 육당의 초상화에 겹쳐진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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