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온 편지|중공매스컴 한국선거에 큰 관심|이념 떨치고 사실 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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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근 중공 국영 신화사통신을 비롯한 중공의 보도매체와 문회보 등 홍콩에서 발행되는 중공계 신문들의 한국 대통령선거에 대한 보도·논평은 서로 체제·이념이 다르고 외교관계도 없는 국가의 언론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중공 언론들의 한국 대통령선거에 대한 비상한 관심은 체육·학술·경제 등 비정치적 분야에서 점진적으로 확대돼 가는 한·중공간의 교류 추세를 고려하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이들 중공 언론들의 보도자세나 논조가 북한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별된다는 점이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한국의 체제자체를 부정하고 민중혁명에 의한 체제전복을 선동·유도하는데 반해 요즘의 중공 언론들은 체제 내에서의 민주발전이나 변화를 오히려 희망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중공 보도기관들은 그들의 체질로 보아 한국 내 일부 극단 좌경세력들의 체제전복을 전제로 하는 구호나 주장을 언급할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또 과거 한국 정치문제에 관한 보도를 대부분 평오에 주재하는 중공 국영 신화사통신이나 중공당 기관지인민일보 특파원의 글을 싣거나, 때로는 북한 선전매체들의 문장을 그대로 전재함으로써 북한의 편향된 대한입장을 대폭 수용하던 관행에서도 탈피하고 있다.
중공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 중공 신문들과 대공보 등 홍콩의 중공계 신문들이 그 전문을 전재한, 한국 대통령선거에 관한 17일자 북경발 신화사통신의 논평은 우리의 시각에서 봐도 제법 객관적인 논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민일보가 『2김 동시 출마 이후』, 대공보가 『3김1노』라는 별도의 제목을 붙여 전재한 이 신화사 논평은 김대중씨는 「고난과 핍박」을, 김영삼씨는 「투쟁 경력과 실적」을, 김종필씨는 「과거의 화려한 경력」을, 노태우씨는 「집권당 후보로서의 우세」를 초점으로 맞춘 인물평을 하면서 4사람 누구에게도 편파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 논평은 「3김1노」의 개개인의 경력은 물론 그 동안의 우여곡절을 제법 깊이 있게 다뤘으며, 또 최근 일부 한국신문의 고심난에 게재된 기사도 인용하고 있어 중공 매스컴의 대한연구와 관심의 깊이를 엿보게 한다.
다만 이 논평이 한국의 매스컴처럼 「1노3김」이 아닌 「3김1노」의 순서 및 입장에서 풀어나간 것이나, 민주당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고문 등 「2김」의 후보 단일화로 정권교체의 확률을 높였으면 하는 듯한 냄새를 간접적으로 풍겼다는 것이 이채롭다면 이채롭다.
『두 김씨는 당국의 압력이 거셀 때는 몇 차례 손을 잡았으나 압력이 완화되면 또다시 분열해왔다』 『두 김씨가 서로 양보하지 않음으로써 집권당은 내심 기뻐하고 야당 지지자들의 마음은 어둡기만 하다』 『이번 대통령선거가 민주의 힘이 전례 없이 강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야당·재야 및 많은 유권자들은 투표직전 두 김 중 한 사람이 사퇴함으로써 민주당은 「병분양노」의 불리한 국면을 전환, 승리의 확률을 높일 것을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그것이다.
어느 한 구절도 과거와 같은 터무니없는 비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중공 언론들의 대한 논조가 객관적이고도 조심스런 논조와 사실 보도 쪽이라면 문회보 등 홍콩에서 발행되는 중공계 신문들은 오히려 한국의 민주화를 걱정(?)하는 분명한 관점에서 적극적인 논평을 가하고 있다.
문회보 12일자 『한국 대통령선거』 제하의 사설이나 13일자 『2김 내홍의 비극』 제하의 세사만필이 그 좋은 예다.
문회보는 제3세계의 국민들이 많은 희생을 치르고서야 독재자의 양보를 얻게되지만 야당은 권력의 유혹 앞에서 분열, 결국 민주화운동은 수포로 돌아간다고 전제한 뒤 한국과 필리핀을 「권력의 유혹 앞에서 분열하는」 상태로 분류하고 있다.
이 신문이 강조하는 것은 특정인의 비난이나 지지가 아니라 독재에 대한 민주화투쟁의 성공이다.
중공계 신문이 말하는 민주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민주화·자유화」를 요구했던 작년 12월의 중공 대학생 데모가 호요방 총서기의 실각이라는 뜻하지 않은 역작용을 불러일으킨 것을 상기하면 중공계 언론의 「외국 민주화투쟁 지지」는 참으로 아이로니컬 한 것이다.
특히 중공 대학생들의 주장 중 당국을 가장 격노시킨 것은 바로 「공산당 1당 독재」를 부정하고 다당제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공산당이 말하는 민주란 바로 민주 집중제를 뜻한다. 이는 공산당 1당 독재를 대전제로 하는 범위 내에서 만민 중 의견의 수렴을 허용하는 것이다.
양당 또는 다당제를 필수요건으로 하는 서방세계의 민주와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그런 아이러니를 일단 접어두고 볼 때 중공의 개방·개혁정책과 4대 현대화 추진을 위한 주변정세, 특히 한반도의 안정을 필수요건으로 하는 그들의 입장이 이들 언론의 논조 속에서도 거울처럼 반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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