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계 드러낸 국정운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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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국정운영이 말이 아니다. 세금.부동산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각종 정책이 손쉽게 번복된다. 우리 생존과 직결된 외교안보의 난맥상은 위험스러운 수위로 치닫고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라는 정부 조직은 말 그대로 우리 안보를 책임진 곳이다. 국정원.군 등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토대로 안보정책을 입안, 대통령에게 보고해 왔다. 투철한 보안의식과 엄정한 근무기강이 요구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런 조직에서 우리 안보에 사활적 영향을 미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비밀 문건이 통째로 누설되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나라든 중요한 외교정책 수립에는 매파와 비둘기파 간의 대립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 간의 치열한 토론을 거쳐 어떤 정책이 결정되면 이를 관철하기 위해 매진하는 게 제대로 된 정부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관련 문건을 정치인에게 넘기는 얄팍한 수를 부린 것이다.

비밀문건 유출 파문의 진상이 뭐가 뭔지 모르게 만든 것도 어처구니없다. "NSC가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한.미 간 외교각서 교환 사실을 알고도 1년여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문건에 대해 청와대는 "대통령은 보고받았다"고 반박했다. 어느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NSC 운영이 총체적 부실이었다는 점을 말해 준다. 무엇보다 '자주'를 얘기하지 않으면 마치 '매국노'인 양 몰아붙인 행태가 가장 큰 문제다. 중장기적인 국익이 무엇인지보다는 이렇게 '코드'에만 매달렸으니 이제는 '강경자주'니 '온건자주'니 하면서 또 다른 분란이 생기는 것 아닌가.

국민생활과 직결된 각종 경제정책을 두고 정부와 여당, 정부 부처 간에 벌어지는 혼선과 난맥상도 이제 도를 넘어섰다. 맞벌이 부부에 대한 소득공제 축소 방침은 나흘 동안 네 번이나 번복됐다. 정부가 하겠다고 발표한 사안을 당이 부인하고, 정부가 강행의사를 밝히면 당이 다시 뒤집었다.

이런 혼란은 당정만이 아니다. 건설교통부가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승인권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환수하겠다고 하자 재정경제부는 그럴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더니 며칠 뒤 당.정.청 부동산대책회의에선 환수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정부 내에서조차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정책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이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국민을 앞에 두고 표면화하는 양상이다. 도대체 뭘 한다는 것인지, 뭘 안 한다는 것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세금과 부동산 문제는 국민 경제생활에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그렇기에 이에 관한 정책 수립이나 변경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권은 소중한 국민의 재산.소득과 관련된 정책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손바닥 뒤집 듯이 엎는다. 이로 인해 빚어지는 국민의 혼란과 불안감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이게 어디 제대로 된 나라의 꼴인가. 외교안보와 국민경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드러난 난맥상은 결국 이 정권 국정운영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라면 국민을 더 이상 불안케 하기 전에 국정운영의 쇄신책을 강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