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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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7면

이 밤에 나는 두 번이나 잠에서 깨어나, 창가로
갔네. 거리의 불빛들은 꿈속에서 읊조리는 한 문장의 파편 하나,
생략점들 처럼, 의미를 캐낼 수 없는 것, 나에게 평안도 위안도 주지 못하네.
나는 아기를 가진 그대의 꿈을 꾸었지, 그리고 지금,
그대와 헤어져 너무 오래 살다보니,
죄의식에 젖기도 하네. 내 손들,
그대의 배를 환희에 차서 어루만졌는데, 알고 보니 내 바지를 더듬대고 있는걸
그리고 전등스위치를. 창가로 발을 길질 끌며 걸어가, 나는 깨달았지
그대를 저기에 홀로 남겨놓은 걸,
어둠 속에서, 꿈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그대, 내가 돌아왔을 때
매정한 별리에 대해 한마디
나무람도 없었네. 어둠 속에서,
불빛이 스러져간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결혼하고 한 몸이 되어
두개의 등을 가진 짐승이 되고; 아이들은
우리의 벌거벗음을 변명해 준다네.
어느 날 밤엔 가 그대는 다시
나에게 돌아오겠지, 지금처럼 지치고 홀쭉해진 모습으로,
그리고 나는 아들이나 딸을 보게 되겠지,
아직 이름도 없는데-그때에 난 전등스위치로 달려가지 않을 거야, 그리고 또
내 손을 치우지도 않을 거야, 난;
그대를 저 침묵하는 그림자들의 영역에 남겨놓을 권리가
없거든, 날(일)들을 둘러싼 담 밖에서,
나를 쓸어안고 하나의 실체로부터 미결의 상태로 떨어지는
그 그림자들의-얻을 수도 없을 테지.
◇오늘 소설「서울의 꿈」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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