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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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모자는 재빨리 벗고, 지갑은 천천히 열라』는 말이 있다. 일본인의 생활을 소개한 크세즈문고(프랑스)에 나오는 얘기다.
일본 사람들의 저축열은 알아줘야 한다. 1억엔을 저축한 할머니가 영양실조로 위독하다는 신문 기사는 일본에선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종종 그런 일이 화제가 되어왔다.
지갑에 넣은 것이 없으면 꺼낼 것도 없다. 사람들은 지갑의 밑바닥이 보여야 비로소 돈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는 이미 쓸 돈도 없고 저축할 돈도 없다. 아무리 결심을 해도 때가 늦었다.
한자로 「저축」의 「저」자는 차근차근 쌓아 놓는다는 뜻이다. 「축」자는 들에 곡식을 쌓아 올린 볏가리 모양을 하고 있다.
「저축」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중국사람들은 실제로 돈을 안쓴다. 대만의 국민저축률은 37·9%로 세계 제일이다.
국민저축률은 GNP(국민총생산)에 대한 저축비율을 말한다.
모자는 재빨리 벗고 지갑은 천천히 연다는 일본 사람들의 국민저축률은 1968년에 이미 38·6%에 달했었다. 그후에도 다소 기복은 있지만 33% 이상은 늘 유지해 왔다.
중요한 것은 국민저축률 그 자체보다 총투자솔과의 대비에 있다. 바로 「지갑에 넣은 것이 있어야 쓸 돈도 있다」는 이치와 같다.
공장을 세우고, 길을 닦고, 항만을 건설하는 투자는 우선 돈이 있어야 한다. 나라에 저축이 없으면 외국에서 돈을 꾸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외자다.
우리나라는 만성적으로 투자할 데는 많고 국민저축은 적어 돈을 무작정 찍어내거나 외채를 wu야했다.
일본은 1968년부터, 대만은 1971년부터 국민저축률이 투자율을 앞서기 시작했고, 따라서빚안지고도 국부를 이룩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금년에야 비로소 국민저축률이 36%를 기록, 총투자율(31%)을 앞서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레일(궤도)에 올라가고 있다는 뜻도 된다. 이제 정치안정의 변수만 없으면 레일 위의 쾌주도 가능할 것 같다. 정치인들이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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