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 놓고 있다는 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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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관가와 사회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보면 행정이 과연 있는지 없는지 의심할 정도다.
전국 도처에서 무허건물이 우후죽순처럼 급증하고 있고 관청 공무원들은 일손을 놓고 있다시피 하고 있다. 교통질서는 엉망이고 시급한 각종 민원들이 제때에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
특히 정부 각부처는 매년 이맘때면 으례 마련하던 새해 업무계획이나 지침의 작성도 손을 대지 않은 채 선거얘기와 선거결과에 따른 자신의 신분변화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이같은 들뜬 분위기 속에 공무원들의 기강은 극도로 해이하고 무사안일과 적당주의, 무책임의 풍조가 팽배하고 있다. 행정공백과 선심공세등 선거철을 틈타고 그린벨트와 녹지대가 곳곳에서 잠식되고있으며 대낮에도 무허가 불법건축행위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기업형 무허가 건축업자까지 등장해 대단위로 집을 지어 전매행위까지 하겠는가. 무조건 지어 놓기만 하면 선거기간에는 철거나 단속도 없어 나중에는 유야무야 되는 구시대 악폐의 재현이 아닐 수 없다.
행정은 일관성과 계속성, 효을성이 생명이다. 행정이 추진하는 사업이나 계획이 정치적 전환기라 하여 중단될 수 없고 단속 또한 지속적이어야 한다. 선거철이라고 해서, 상황이나 입장이 달라졌다해서 사업이나 계획이 변경되거나 중지되어서도 안되고 엄연한 범법행위를 눈감아 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높은 지위에 있는 공무원일수록 되도록이면 골치 아픈 사업이나 책임이 돌아갈 일들을 기피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데도 깔아 뭉개버리려 하고 있다. 시민이 싫어하는 일, 선거에 나쁜 영향을 끼칠 단속을 외면하는 것은 분명 직무의 태만이고 유기다.
보신에 급급한 무사안일과 적당주의 정도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며 이권이 오가고 먹자판 현상도 없지 않다고 들린다. 아무리 선거도 좋고 정치적 변화도 좋지만 선거때마다, 정권교체기마다, 이런 현상이 속출한다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행정기반과 법질서까지 무너진다면 너무 큰 대가이고 희생이다. 행정이 위기에 처할 정도로 공무원 기강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정부가 손을 쓰지 않는 까닭을 알 수 없다.
부처마다 감사기구가 있고 대통령 직속의 감사원도 있다. 평소에 그토록 잦던 감사와 조사기능은 왜 발동하지 않는가.
더구나 수사기관을 통한 사법적 통제도 있고 국회나 정당의 통제기능도 있는데 어느 기능도 작용하지 않는 것 같다. 정당이나 국회기능을 통해서라도 문제를 제기하고 책임소재를 따지기는 커녕 오히려 무슨 사업이다, 빚탕감이다 하며 허황된 공약만 다투어 남발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공약도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선거 열기속의 행정공백에 대한 대책이 보다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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