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게 싸우다가 깨끗이 승복|경선 후유증 없게 당 조정에 위임|탈락 후보들, 축하인사와 함께 협력 다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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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최철주특파원】어느 선진국가 못지 않게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선거제도가 정착되어있는 일본에서 집권 자민당의 차기수상이 선거에 의하지 않고 「나카소네」현 수상에 의해 지명됐다는 것은 민주당대통령 후보 2명의 본격적인 선거유세를 보고있는 한국인에게는 매우 의아스러운 결과였다.
경제·기술대국 또는 국제국가가 됐음을 자랑하는 일본의 최고 정치지도자가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있을법한 후계자 지명 절차를 밟았다는 것은 난센스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자민당이 극력 경선을 피하고 현 수상의 후계자 지명절차를 받아들인 것은 당의 결속과 정권안정을 중시하는 일본의 정치환경의 소산이며 그 과정이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정치의식과 민주적 기본 틀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도 제기되지 않고 있다.
당총재 및 수상자리를 바로 눈앞에 둔 「다케시타」「아베」「미야자와」 등 세 후보는 지방색을 들추거나 흑색선전도 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참모들도 상대후보에게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는 저질발언을 삼갔다.
「다케시타」씨가 총재로 지명되기까지 세 후보는 지난 10여일동안 20여차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절충을 시도했으며 막판에는 「다케시타」의 승리에 모두 승복했다.
3인의 후보가 정식으로 등록한 것은 지난 8일. 금전을 둘러싼 매수 등 부패선거전을 방지하기 위해 선거시기를 예정보다 열흘 앞당겨 20일로 결정했다.
경선에 따른 갖가지 후유증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해 3자가 「의논」으로 후보를 단일화하는 것이 좋겠다는데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다케시타」와 「아레」, 또는「아베」와 「미야자와」가 번갈아 만나거나 3인 공동회담을 열어 한 후보가 과반수 지지세력을 획득할 수 있도록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방안이 모색되었다. 그러나 3인 모두 자신을 먼저 밀어달라고 서로 요구해 협상은 마지막까지 평행선을 달렸다.
15일과 16밀 세 후보는 각각 「나카소네」수상을 찾아가 자파 지원을 요청했다.
이때 「다케시타」는 「나카소네」에게 후계자지명에 따른 백지위임의 뜻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 후보의 단일화를 조정하기 위해 자민당 5역회의가 소집되었다. 당총재로서 의장자리에 앉은 「나카소네」 는 다른 4명과 함께 세 후보의 절충결과를 보고 받았다. 3후보는 마치 시험관 앞에 선 수험생들처럼 초조해했으나 당 조직과 협의기구의 권위를 존중했다.
19일 「다케시타」와 「아베」는 무려 8시간 반에 이르는 마라톤회담을 가졌으나 성과가 없었다. 이날 「아베」가 매기수상으로 지복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다나카」파에서 분파되어 나온 「다케시타」를 몹시 미워해 온 「니카이도」가 어떤 일이 있어도 「다케시타」 가수상이 되는 것을 저지하겠다고 공언하는 일막도 있었다.
3인3색으로 자신이 서로 승산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후보간의 회담도 결론이 없었다. 선거 D데이를 하루 앞두고도 더 이상 진전이 없자 이들은 「나카소네」에게 후계자를 지명하도록 각각 백지위임의 뜻을 밝혔다.
이날밤 「나카소네」는 최후의 당 5역회의를 소집했다. 자민당은 세 후보가 최후까지 대화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모두 성실한 자세로 자기소신을 피력했다. 2O일 새벽 「나카소네」는 「다케시타」를 후계자로 지명하는 재정문을 세 후보가 있는 곳에 보냈다.「아베」는 열굴 색이 변했으며 「미야자와」는 충격을 못이겨 종이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아베」와 「미야자와」는 곧 정신을 가다듬고 「다케시타」에게 『총재취임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건네고 「다케시타」 신내각에 아낌없이 협력할 것을 다짐함으로써 어제의 라이벌이 내일의 정권 동반자가 될 것임을 천명했다.
「나카소네」는 그의 재정문에서 당의 임치단결, 거당체제의 필요성, 국회의원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고 국민의 기대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다케시타」를 증오했던 「니카이도」도 의외로 그에게 축하를 보냈다.
「다케시타」가 후계자로 지명되기까지의 과정은 「밀실협의」 「파벌담합」으로 이루어져 국민들의 관심을 감퇴시켰다는 비판도 있으나 끝까지 세 후보가 대화와 협조를 중시한 것은 정치주역들의 보다 더 높은 적치수준을 보였다는 점에서 우리의 시선을 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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