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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인류의 과거와 다가올 운명 … 2만1000개 유전자는 알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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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685쪽, 2만5000원

나병이 유전된다고 오해한 일제는 나환자를 상대로 강제 불임시술을 했다. 이런 인권침해는 해방 한참 뒤 ‘나병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비로소 중단됐다. 이런 비극은 사실 유전학과 관련이 있다. 근대 유전학은 19세기 모라비아(지금의 체코 )의 가톨릭 사제였던 그레고어 멘델이 완두콩 실험으로 식물 유전을 확인한 게 시초다. 그 뒤 형질이 유전된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유전의 본질은 몰랐던 우생학자들이 열등 유전자의 유전을 막겠다는 비과학적인 생각을 한 것이 불행의 씨앗이 됐다.

나치는 우생학을 학살의 명분으로 삼았다. 오해가 낳은 사달이다. 유전학은 죄가 없다. 인도 출신으로 암을 연구하는 의사이자 과학 저술가인 지은이는 유전자가 변이되고 진화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유전정보 물질인 DNA 구조의 비밀을 파악함으로써 유전자가 조절·복제·재조합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유전자를 조작해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인간 유전자를 분석해 앞으로 어떤 질병에 걸리고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생노병사의 인간 삶이 결국은 유전자 코드에 따라 조절되는 현상임을 눈앞에서 알 수 있는 시대다. 인간은 유전으로 인한 질병을 숱하게 확인했다. 동시에 유전자를 ‘편집’해 이를 치료할 수도 있게 됐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간, 더 나아가 인류의 운명을 바꾸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특히 줄기세포를 이용해 거의 모든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조작한 뒤 생물의 유전체에 집어넣어 영구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됐다. 지은이는 인류가 역사를 추진하는 충동·야심·환상·욕망은 2만1000개에 이르는 인간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인류 역사는 이런 특성을 가진 유전체를 선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역사는 반복되는데 그 이유의 어느 정도는 유전체 자체가 반복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과연 그럴까’라는 회의주의마저도 인간 유전체 어딘가에 새겨져 있을 것이란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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