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침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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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5일자 신문의 해외 토픽란에 실린 이색사진 한장이 눈길을 끈다.「아키노」필리핀 대통령이 자신의 침대 시트를 들어 올려 침대 밑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침대는 바닥까지 칸막이로 막혀있어 쥐새끼 한마리도 기어들어갈수 없게 되어 있었다.
「아키노」여사가 자신의 은밀한 규방을 기자들에게 공개한 사연이 재미있다. 지난8월 불발쿠데타가 일어나던날 밤「아키노」대통령은 말라카냥궁 안에 있는 자신의 침실에서 반군의 총소리를 들었다.
그것을 가지고 필리핀 스타지의 칼럼니스트「루이스·벨트란」은 겁에 질린「아키노」대통령이 침대밑에 숨었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그러나 이 칼럼을 본「아키노」대통령은 노발대발했다. 자신은 침대 밑에 숨은게 아니라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기도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해명이 신문에 보도되자「벨트란」씨는 자신의 글은 대통령이 꼭 침대 밑에 들어갔다는 뜻이 아니라 황급한 정황을 그렇게 묘사했다고 변명했다.
그쯤 했으면 끝날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아키노」여사는 지난 13일 기자들을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여 문제의 침대를 공개했다. 어쩌면 지나친 결벽증 탓일지도 모른다. 대통령으로서는 너무 나이브한 행동이다.
그러나 「아키노」여사에게는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지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대통령궁의 전주인이 누구인가.「마르코스」전대통령까지 들먹일 필요없이 같은 여성인「이멜다」여사의 구두가 2천켤레나 되었다는 가십이 전세계의 화제가 되지 않았는가. 얼마전「아키노」여사는 자신의 구두는 세컬레 밖에 안된다고 밝힌 일도 있었다.
어쨌든 사태가 이쯤되자 필리핀 스타지는 13일자1면에「아키노」대통령에 대한 공개사과문을 크게 실었다. 그뿐아니라 만평란에는 올리브가지를 흔드는 모습의 그림을 싣고『대통령에게 죄송하다』는 캡션을 달았다.
그야말로 해피 엔딩으로 끝낸 시말서지만, 권위주의에 젖은 우리에게는 어딘가 인간적인 체취가 풍기는 소화 한토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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