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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자본과 한국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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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대내적으로는 국내 자본과 기술이 크게 성장했으며 외국 자본의 도입 형태도 공공차관 도입에서 민간의 직.간접 투자에 의한 진출로 바뀌었다. 대외적으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기업의 오프쇼어링(off-shoring;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 일반화 등으로 인해 생산요소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기업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글로벌 경쟁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여건 변화는 한국 사회에 현 시점에서 외국 자본을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해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꾸준한 회복세를 보이며 잠재성장률 수준의 정상 궤도로 복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경제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연 10% 이상의 증가세를 유지하며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설비투자는 2000년대 이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경제 구조의 고도화 추세와 함께 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성장잠재력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성장률의 추세적 하락은 다른 선진국처럼 경제의 성숙에 따른 일반적이고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측면도 있으나, 우리 경제가 아직 소득 2만 달러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향후 성장 추세의 급격한 하락이 나타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현재 우리는 지속 가능한 성장과 선진국으로의 안정적 진입을 위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외국인 투자는 국내의 투자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신기술이나 경영 기법 등의 도입을 통해 우리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신 성장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의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일랜드는 1980년대 이후 개방과 외자유치를 통해 유럽의 변방에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상회하는 선진 부국으로 탈바꿈했다. 가깝게는 아시아의 홍콩.싱가포르.중국 등이 외국 자본의 유치를 통해 고도성장의 기반을 이룩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투자 현황은 과연 어떠할까.

공공차관을 제외한다면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 자본의 진출은 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98~99년 외국인 직접투자액수가 외환보유액 증가분의 27%를 차지하여 외환위기 극복에 크게 공헌했다. 97년까지 246억 달러에 불과하던 외국인 직접투자는 98년 이후 지난해까지 8년간 908억 달러로 급증, 단기간 내 많은 유치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유치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2005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국인 직접투자액 비율은 8.1%에 불과해 전 세계 평균 21.7%에 크게 뒤처져 있다. 또한 외국인 직접투자 잠재력 지수는 140개국 중 20위인 데 반해 성과지수는 109위에 머물러 유치 잠재력만큼의 실제 외국인 직접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향후 우리 경제가 미래 성장동력의 기반 확충을 위해 보다 많은 외국자본을 받아들일 여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이와 같은 인식 아래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가지고 외국인 투자정책을 운용해 나가려 한다. 첫째는 내외국 자본의 동등대우를 통해 공정경쟁의 장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외국 자본이 국내법을 준수하고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다면 국내에서 자유롭게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칙 아래서 국내외 자본이 각자의 기술과 경영기법을 가지고 공정한 경쟁을 벌임으로써 우리 경제의 생산성 향상과 소비자후생 증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제도와 관행의 선진화를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기업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 시대의 특징은 자본.기술.인력 등의 생산요소가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으므로 기업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생산 요소의 많고 적음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직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경제제도만이 우리 본래의 것이고 우리에게 남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좋은 자본과 기술, 그리고 우수한 인력이 들어올 수 있도록 우리 시스템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대내외적인 경제제도의 혁신을 통해 세계경제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선진 통상국가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저술한 바 있는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두 번째 베스트셀러인 'The World is Flat'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공식 가입한 며칠 뒤 베이징의 연료 펌프 공장에서 미국식 교육을 받은 중국인 관리자가 아프리카 속담을 중국말로 옮겨 공장 한가운데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매일 아침 가젤(아프리카산 영양)은 깨어난다. 가젤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잡아먹힌다는 것을 안다. 매일 아침 사자도 깨어난다. 사자는 가장 느린 가젤보다 더 빨리 달리지 못하면 굶어죽는다는 것을 안다. 당신이 사자냐 가젤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해가 뜨면 당신은 뛰어야 한다." 그리고 프리드먼은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누가 가젤이고 누가 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만은 분명히 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뒤 중국도 세계도 더욱 빨리 뛰고 있다는 것을."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전 세계적인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뛰어야 한다. 그리고 외국 자본 역시 국내 자본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뛰기 위한 좋은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권태신 재정경제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