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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파월은 사임할 수 밖에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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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최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도 자신은 사임할 것이란 언론 보도를 즉각 부인했다. 그러나 이는 앞뒤가 안 맞는 것으로 설득력이 없다. 파월은 예전에 부시 대통령의 뜻에 따라 장관직을 맡는다고 자주 밝혔기 때문이다. 이 말은 차기가 시작되는 2005년 1월 계속 국무장관을 맡을지 선택권이 그에게 없다는 뜻이다.

우선 가능성이 희박한 얘기지만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하면 민주당은 자체 국무장관을 내세울 것이기에 파월에게는 기회가 없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경우라도 공화당 우파가 파월 장관의 재임을 막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벌일 태세다. 파월이 현 내각에서 우파와는 다른 종류의 공화주의와 외교 정책 비전을 대표하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부시 대통령도 더 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다.

2000년 대선에서 파월은 부시가 공화당의 온건파들에게 약속한 인물이었다. 파월이 국무장관을 맡는다는 기대감은 유권자뿐 아니라 아버지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 참여했던 공화당 내 기성 인사들에게 새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도 노련한 인사가 맡을 것이란 안도감을 줬다.

그러나 유권자들이나 공화당 기성층은 9.11 테러사태나 뒤이어 신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의 정책을 장악할 것이란 사실을 예상치 못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테러 공격에 대한 대응책으로 자신들이 국제사회의 악이라고 규정한 테러리즘.불량 국가.늙은 유럽 등을 선제 공격해야 한다고 새로 제시했던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하면 이러한 새 외교정책도 확실하게 인정받게 된다. 따라서 부시는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이 가져온 국제적 외교.정책 스타일을 버리지 말라는 공화당 온건파의 충고를 들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정책을 뒤집는 셈이다. 설사 이라크의 상황이 악화된다 해도 대통령직을 다시 차지한 부시에게 이라크에 대한 온건파들의 경고를 되새길 필요도 없어진다. 그러나 파월은 언제나 이들 온건파에 속했다.

그는 재선 이후 부시가 계속 필요로 한다면 국무장관직을 그만두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과 같은 인사들이 파월의 사임을 바라는 상황에서 그를 유임시키지 않을 것이다. 또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국무장관직을 원할지 모른다.

국무부의 개혁을 주장하는 깅그리치는 이미 국무부 관료들을 장악하고 부서의 직업윤리를 바꾸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이들 공화당 우파는 부시가 재선한 뒤에 국무부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국무부는 자유주의자나 국제주의자, 협상.타협.화해를 통해 미국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 인사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외교관이나 국무부 내 전문직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들의 직업적 의무는 선출된 행정부의 틀 내에서 사심없이 국가 정책을 수행하는 요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못마땅해 하는 우파들은 국무부의 초당파성을 보장한 규정들을 없앰으로써 그들과 일치하는 이데올로기를 부여하고 국무부를 재창조하길 바란다. 앞으로 재선에서 승리하면 우파의 세력은 커지는 반면 저항세력은 정부 내에 거의 남지 않을 것이다.

파월이 2기 부시 행정부에도 남는다면 여기에 맞서 싸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싸움은 비충성파와 배신자를 고발하는 따위의 1950년대 매카시즘 때와 닮은 정말 불유쾌한 싸움이 될 것이다. 더 나쁜 것은 매카시즘이 극성을 부린 동안에도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 등 미 정보기관의 통일성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고, 결국 매카시즘은 잘못된 것으로 판가름 났지만 앞으로는 그러하지 못할 것이란 점이다.

당시에는 온건파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있었지만 현재 공화당에는 온건파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차이 때문이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온건파의 마지막 인사였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정효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