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의 조사와 공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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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선거를 앞두고 아무개 정치인의 인기도는 어느 정도일까. 이런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모의투표를 하거나 그 결과를 세상에 알리면 「1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백50만원이하」의 벌금 「형」을 받는다. 인기투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공신력 있는 전문기관이 그런 일을 했어도 소용없다.
현행 「대통령 선거법 이 그런 조항을 둔 것은 이유를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이를테면 어느 「사쿠라」 단체가 그런 행사를 통해 결과를 조작하거나 왜곡해 발표했을 때, 악용할 소지도 있을 수 있다.
더구나 모략과 중상과 음모가 횡행하는 정치판에서 십중 팔구는 그럴 위험도 있다. 정직하고 공정하게 그런 일이 이루어진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세상에 완미한 제도란 없다. 얻을 것과 잃을 것을 잘 헤아려 하나라도 얻을 것이 더 많은 제도를 취하면 잃을 것이 더 많은 제도를 고집하는 것 보다 휠씬 낫다. 세상은 그런 상대우위적인 제도에 의해 한발, 두발씩 앞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요즘 일부 대학가에서 있었던 대통령 모의투표 문제만 해도 그렇다. 그런 행사를 주동한 사람들이 붙잡혀 갔다. 지금의 대통령선거법을 곧 바로 적용했다.
법이상으로는 당연히 시비가 일만 하다. 아직 공식후보로 등록된 사람도 없고, 선거일정은 물론이고 「선거운동기간중」도 아닌데, 모의투표가 무슨 법에 걸린다는 말이냐는 반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런 법이를 놓고 가타부타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원친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첫째, 국민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견해표시를 가로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뭐라는 것은 새삼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한쪽에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만들어 놓고, 다른 한쪽에선 그런 자유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잡아가면 그게 도리에 맞는 일인가.
둘째로는 모의투표 결과를 악용한다고 주장하는 논리다. 그것은 국민들이 어리숙하다는 전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모의투표」 결과 못지 않게 그 과정이 믿을만하냐, 아니냐쯤은 스스로 분별할 수 있다.
국민들은 그만한 눈치와 식별력은 갖고 있다고 본다.
셋째,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공신력 있는 결과를 내놓으면 얼마나 좋은가. 인기있는 사람을 두고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더구나 지금 국민들이 똑똑히 보고 있는 것처럼 암중모삭의 정치항로에서 그것은 하나의 나침반 구실도 할 수 있다.
네째는 여론 수집기술도 이제는 상당수준으로 과학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수많은 여론조사기구들이 장사를 할 수 있을 만큼 이들은 공신력을 쌓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그런 공부를 한 학군들,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 우선 신문사의 여론조사도 벌써 많은 실적을 갖고 있다.
언필칭 「여론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를 외치면서 여론의 큰 흐름을 볼 수 있는 여론조사를 공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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