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심상복 <경제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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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역사적으로 볼때 폭정의 제1형태는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들이는 가렴주구로 나타나고 선정은 억울함이 없게 하면서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곧잘 표현되어왔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최근 민정당이 「억울한 세금 고충 처리제」를 도입, 서민층의 세금을 덜어주고 과세상의 부조리를 없애겠다고 한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올해는 당초 목표보다 세수가 7천억원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서민들의 세금을 얼마쯤 경감시켜준다해서 내년 국가재정에 주름살이 낄것 같지도 않기에 시기적으로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이 개선방안의 발표경위를 뜯어보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속담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우선 획기적인 민원봉사실 개선의 제2탄으로 국세청이 마련한 이 제도가 이례적으로 민정당 이름으로 발표되는 경위가 아리송한 것이다.
납세 관련 민원처리에 관한 세부적인 일은 당연히 국세청의 고유업무임에도 불구, 민정당이 당정협조라는말을 빌어 공을 가로채는(?) 것 같은 감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당쪽에서 수집된 세금 관련 민원사항을 당이 앞장서서 해결하겠다는 점도 이해는 간다. 때가때인지라 선심용·득표용·생색용은 모두 당으로 몰아주자는 생각이 당정간에 일치를 본 때문일까.
한편 이 제도 자체가 안고있는 몇가지 문제점도 눈에 걸린다.
한 예로 1가구1주택 기준을 완화, 「주민등록표상 1년」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1년이상 살았다는 것이 입증되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도록 한 점이다.
기본적으로 1가구1주택제도는 「있는 사람」들이 투기 목적으로 여러채의 집을 소유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것이고, 따라서 기준을 완화하면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이 더 득을 보게 마련이다.
또 영세민의 부동산 취득자금에 대해 출처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한것도 있는 사람들의 재산 위장분산에 이용될 소지가 되는 것이다.
억울한 세금과 관련된 각종 민원에 대해 일선세무서장에게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자칫 세금의 공명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문제점도 배제할수 없을 것이다.
이번 세금 고충 처리제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과 발표경위를 보면 선거를 앞두고 생색만을 의식한 선심행정의 또다른 사례가 아니가 하는 의구심 때문에 씁쓸한 뒷맛을 지울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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