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113)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왕노파가 아침 일찍 찻집 문 앞을 비로 쓸며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흘끗흘끗 금련네 집을 훔쳐보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서문경과 금련이 연이 바람을 따라 하늘 높이 춤을 추듯이 밤새도록 서로 몸을 탐하며 극락의 바람을 타고 둥둥 떠다녔을 것이라 생각하니 부럽기도 하고 심술이 나기도 하였다. 자고로 쾌락도 극에 달하면 재앙이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서문경과 금련이 뜨거운 정염을 불태울수록 왕노파 마음은 왠지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 불안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사병 하나가 집 앞을 쓸고 있는 왕노파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어, 저 집이 무대랑 댁이 아닌가요?"

왕노파는 이미 죽은 무대 이름을 들먹거리는 사병을 의아한 듯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지친 얼굴에 복장이 꾀죄죄한 것으로 보아 꽤 먼 길을 걸어온 성싶었다. 그렇다면 무대가 죽은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왕노파는 죽은 사람을 왜 찾느냐고 쏘아붙이려고 했다가 예감이 이상하여 얼른 말을 바꾸었다.

"무대랑 댁이 맞소만. 어디서 오는 거요?"

"아, 집은 잘 찾아왔군요. 나도 이전에 한번 들렀던 집인데. 몇 달 만에 와 보니까 동네도 좀 바뀐 듯하여 얼떨떨하군요. 사실은 무대랑 동생인 무송 포도대장을 내가 모시고 있는데 이번에 동경 출장 길에 동행했지요."

무송이라는 이름이 사병의 입에서 나오자 왕노파는 그만 등골이 서늘해졌다.

"무, 무, 무송이 돌아왔단 말인가?"

"그게 아니고요. 무송 대장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그 대신 내가 먼저 와서 무대랑에게 편지를 전해주려고요. 현감에게도 무송 대장이 쓴 편지를 전해 드릴 거예요."

"그, 그래 무송 대장은 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거요?"

왕노파의 목소리가 계속 떨리고 있었다.

"무송 대장은 현감 심부름으로 동경 주태위 어른에게 서신과 선물을 전달하고 거리 구경을 며칠 한 후에 청하현으로 돌아오려고 산동으로 통하는 길로 접어들었지요. 그런데 연일 비가 쏟아져 산사태까지 나고 길이 막혀 자꾸만 지체되었지요. 게다가 무송 대장은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고 일가친척이 매몰된 산골 동네 사람들을 돕는다고 하다가 그만 다리를 다치고 말았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편지를 가지고 온 것이지요. 편지 글은 봉해져 있어 잘 모르지만 아마도 팔월 중에는 돌아올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을 거예요."

"팔월 중이라?"

왕노파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팔월이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기간이었다.

"무, 무대랑에게 줄 편지는 나에게 두고 가오. 내가 전해주겠소. 지금 집에 가보아도 사람들이 없소. 모두 성묘하러 산소에 갔거든. 선산이 제법 먼 곳에 있어 하루 이틀 만에 돌아올 수도 없을 거요."

"그래줄래요?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난 빨리 무송 대장에게로 돌아가봐야 하니까요."

사병은 품에서 주섬주섬 서신 한 통을 꺼내어 왕노파에게 건네주었다. 왕노파는 현감에게로 갈 편지도 챙겨야 하지 않나 싶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사병이 현감에게 가서 편지를 전달하면 현감이 무대가 죽은 사실을 말해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우리 찻집 손님 중에 현감 어른이랑 친하신 분이 한 분 있는데 그분에게 편지를 맡기면 그분이 현감에게 편지를 전해줄 수도 있소."

사병이 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정말 그분에게 맡기면 현감에게 틀림없이 전달될 수 있나요? 하긴 나 같은 졸병은 현감 어른 뵙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지. 내가 직접 뵙지 않아도 무송 대장이 편지에 다 썼으니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