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VVIP(최우수 고객)를 위한 팀 단위 자산관리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까다로운 ‘슈퍼리치’와 법인 고객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은행 지점 한편에서 전담 PB 한 명과 상담하는 건 이미 유행에 뒤떨어진 풍경이 됐다. 계열 증권사와 협업해 세무사·회계사·변호사가 참여하는 방문 상담 팀을 구성하거나, 아예 고객 한 명당 네 명 이상의 전담 직원이 배치되는 상담 센터를 세우는 게 트렌드다.
세무사·변호사·자산배분 전문가 등 #정예 멤버로 팀 꾸려 원스톱 서비스 #고객 1명 위해 4명 이상 전담 직원 #씨티은행은 청담동에 전용 센터
KB금융지주가 올 들어 구성한 ‘WM(자산관리)스타 자문단’에는 은행과 증권사 소속 전문가 24명이 참여한다. 투자전략과 포트폴리오를 짜는 전통적 PB(자산배분 전문가)뿐 아니라 부동산 전문가, 세무사, 회계사, 변호사가 한 팀을 이뤄 방문 상담을 다닌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은행과 증권사 상담을 한 곳에서 받을 수 있어 고객들의 만족이 높다. 이호용 국민은행 투자솔루션부 차장은 “자산가들의 성향이 고위험·고수익 단일 상품투자에서 중위험·중수익 통합 자산관리로 옮겨진 데 착안해 그룹 내 전문 인력을 한 곳에 모았다”고 설명했다.
은행이 거점 점포 몇 곳만 골라 고급화·대형화하는 경향도 팀플레이 부자 상담과 관련 있다. 전체 점포 수를 줄이는 대신 돈이 모이는 곳에 투자를 아낌없이 하겠다는 의도다. 씨티은행이 지난해 12월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한복판에 연 청담센터에는 팀장급 고참 PB 30여 명을 비롯한 전문가 70명이 상주한다. 지상 5층, 지하 2층짜리 건물 한 채가 대부분 유리벽으로 둘러싼 고객 상담실로 채워져 있다. 이 곳에서 ‘CPC(Citigold Private Client)’로 불리는 고액자산가들은 1인당 팀장급 PB 2명을 기본으로 배정받는다. 원하면 언제든지 포트폴리오 전략가와 보험상품 전문가를 추가로 면담할 수 있다. 유명 미술품과 수입 가구를 들여 특급호텔 회원 라운지 못지않은 시설을 갖춘 이 곳은 최근 부유층 사이에 입소문을 타 방문객이 늘었다. 김정현 씨티은행 청담센터장은 “간판을 크게 달거나 홍보를 하지 않는데도 이용 고객이 지인을 줄줄이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뜸했다.
자산관리에 여러 명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이유는 그만큼 고객들이 양적·질적으로 성숙한 서비스를 원하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맞물려 부자들은 한 곳에서 안정적이고 통합적인 자산관리를 받고 싶어한다. 이은정 KEB하나은행 골드PB팀장은 “이제 부동산이나 법률·세무 자문 없이 단순 펀드 추천만 해서는 단골 고객을 만들기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통상 60대 이상인 자산가가 40대 PB 한 명이 하는 말만 믿고 투자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팀 상담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이 은행은 경기도 분당에 사는 한 200억원대 자산가에게 부동산 투자자문사 상담을 제공했다. 매입한 단독주택에 상가를 신축해도 될 지를 고민했던 그는 “지역 입지상 상권 형성에 오랜 시간이 걸려 희망 수익률을 내기 어렵다”는 답을 얻고 돌아갔다고 한다.
은행들은 새 먹거리를 찾고자 PB 서비스에 자원과 인력을 집중한다. 예대마진과 수수료로 수익을 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액 자산가 상대 자산관리 시장 규모는 빠르게 성장 중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100만 달러(약 11억원) 이상 금융자산을 예치한 고액자산가 계층의 자산관리 시장 규모는 2010년 22조 달러에서 지난해 9월 32조 달러로 45% 늘었다. 주윤신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부유한 계층일수록 자산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국제적 현상”이라면서 “국내 자산관리 시장이 선진국에 비해 초기 단계인만큼 다양한 고객 요구를 맞추기 위한 역량 강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