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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한센병 환자 '강제 낙태·불임 수술' 인정…국가 배상 첫 판결

중앙일보

입력

강제로 낙태ㆍ불임 수술을 시킨 한센병 환자들에 대해 국가가 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간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하급심 판결은 있었지만 대법원에서 이에 대한 확정 판결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15일 강모씨(81)씨 등 1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정관 절제과 임신중절 수술은 신체에 직접적인 침해를 가하는 의료행위”라며 “미리 동의나 승낙을 받지 않아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했다”고 판시했다.

소송을 제기했던 강씨 등 19명은 한센병을 앓던 환자들이다. 이들은 1950년경부터 1978년까지 한센병 환자의 치료 및 격리수용을 위해 운영해 온 국립소록도병원, 익산병원(소생원) 등에 입원했다. 그리고 강제로 낙태나 단종 수술을 받았다.

2007년 한센인피해사건법이 제정되면서 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위원회는 조사를 거쳐 강씨 등 19명을 법에서 정한 피해자로 지정했다.

이를 근거로 강씨 등은 2013년 8월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달랐다. “모두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은 수술이었으며 당시 의료 수준에선한센병의 전염예방과 병원의 수용시설 한계 등을 고려해 부득이하게 취해진 조치였다”고 반박했다.

또 “낙태수술이 불법이더라도 5년이 지나 소송이 제기됐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1ㆍ2심 재판부는 강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국가가 이들에게 3000만~4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이날 대법원도 이같은 원심을 확정해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엔 다른 한센병 피해자들 수백명이 제기한 소송이 5건 계류 중이다. 개개인별로 사안은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이번 판결이 앞으로의 유사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윤호진·서준석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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