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륜 파괴의 상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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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상은 차츰 가라 앉는것 같다. 그동안 여름날씨만큼이나 법석을 부리던 매일 매일이 요즘은 한결 조용해겼다. 이대로 제자리를 잡아가기만 하면 전화위복의 날을 기다릴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노사분규를 통해 모든 기업들은 뼈아픈 교훈을 얻었으리라 생각된다. 언필칭 국민 소득이 2천3백달러를 넘고 경제규모 (GNP)도 세계18위쯤으로 성장했으면 기업들도 좀 성숙해져야 한다.
근로자들의 주장가운데 지나칠수 없었던 대목은 『인간다운 대우를 해달라』는 요구였다.
사람들은 이제 배가 고픈 시대는 졸업하고, 마음이 고픈시대에 살며 사람다운 삶을 희구하게 되었다. 시대는 이처럼 바뀌었는데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나간 시대의 가치기준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동안 노사분규로 인한 경제손실은 가위 천문학적인 액수에 달한다. 8천수백억원이라는 집계도 있었다.
그러나 실로 우리가 참담해 해야할 것은 8천억원어치의 원료와 제품과 기회손실이 아니라 돈으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조차 없는 엄청난 상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엊그제까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회사조직의 수직관계가 하루 아침에 망가져 버렸다. 어떤 경영주의 집엔 「악덕 기업인」이라는 「인민재판」식 방(榜)이 붙는가하면 입에 담지못할 욕설을 듣고 농락의 대상이 된 예도 있었다. 평소 아무개 형, 아무개 씨로 불리던 직장의 수평적 인간관계 역시 서로 각목을 휘두르는 상대 사이로 둔갑한 회사도 있었다.
설마 노사분쟁 앞엔 조직의 상하도, 좌우도 없다는 말은 아닐텐데, 현실은 빗나가고 말았다. 회사는 어쨌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생활의 요람이며 상사와 동료는 모르는체 할수없이 같은 조직의 구성원이다. 더구나 경영주인 경우는 월급을 주고 회사를 키우기위해 노심초사 밤낮없이 심혈을 기울여온 적성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를 노사분규라는 명분으로 뭇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게하고 돌팔매를 받게하고, 위협과 인간적 모멸을 가한다면 이 세상의 질서는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그 비슷한 일은 비록 모양은 다르지만 세칭 명문대의 캠퍼스에서도 벌어져 고인이된 노스승의 분향소를 밀어낸 일도 있었다. 도대체 스승의 자리가 어디며 제자의 자리가 어딘지 가늠할 수 없다.
다행히 노사의 경우 타협을 이루어 만세를 부르고 악수를 나누고 막걸리 사발을 주고 받는 장면들도 있었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 속에 남은 상처와 응어리들이 그런다고 쉽게 아물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성·신의·인격·인륜과 같은 문제는 실로 미묘하고 깊은 감성으로 이루어져 한번 상처를 받으면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시간이 지나가면 유야 무야 희석이 되고 또 보상만 있으면 금방 해소되는 물질적 손실과는 그 점에서 구별된다. 도덕적인 배신과 모멸감은 두고 두고 사람의 마음을 할퀴고 아프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사상 일찌기 없었던 이번의 노사분규들은 바로 그런 씻지못할 마음의 생채기들을 여기저기 깊게 새겨 놓았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허허벌판 황무지위에서 우람한 공장들을 세우고 그 요람속에서 세계 시장을 활보할 수 있는 기업들을 성장시켰다. 이것은 뭐니뭐니해도 우리 국민의 도덕적인 힘이 기초가되었다.
누구나 하는 얘기지만 우리나라는 금쪼가리같은 자원을 쌓아 놓고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계가 깜짝 놀랄 기술을 감추어놓고 있는것도 아니다.
그저 가진것이라고는 도덕적으로 잘 무장된 국민들의 근면과 성실이 전부다. 서양의 학자들은 그것을 유교문화권의 도덕적 기반이니, 강점이니 하는 말로 실명하려고 한다.
정작 우리가 그런 말을 하면 켸켸묵은 고리짝이라도 건드리듯 진부하다는 말로 외면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서양사람들은 도리어 선망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서양 사람이 뭐라고 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수천년을 두고 우리들의 생활속속들이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온 도덕적 규범을 하루 아침에 못본체, 모르는체 외면하는 것은 자기부인이나 마찬가지다.
유교적 규범이라면 얼른 삼강오륜을 찾고 예와 인을 얘기한다. 그러나 공자는 더 간단한 말로 이런 비유를 했다. 군군 신신 부부 자자.
「군」 은 오늘의 시속에서 굳이 임금으로 새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웃어른으로 생각하면 능히 알아 들을만하다. 「웃 어른은 웃어른답게, 아랫사람은 아랫사람답게, 어버이는 어버이답게, 자식은 자식답게」의 질서는 오늘이라고 번거롭고 어색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것마저도 거부하면 사람사는 세계라고 할수 없다.
우리나라 경제발전도 그런 가치 기준으로 보면 유교문화권의 강점이라는 얘기가 절로 나올만하다. 기업주는 기업주답게 기업을 일으켜 세우고 발전시켜 가는 일에 헌신하고, 근로자는 그런 기업주의 노고를 인정하면서 자기 몫의 일을 성실하게 해낸다.
노사의 그와같은 의기투합이 결국 오늘의 우리나라를 중진국으로 밀어 올렸다. 이것은 에누리없는 현실이며 두고 두고 우리 민족이 자랑삼을 일이다.
우리는 지금 나라를 세워가고 있다. 건국 40년에 무슨 나라를 또 세우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언제 나라다운 나라 한번 번듯하게 가져본 일이 있는가.
이제 민주주의를 명실상부하게 제대로 해보자는데 이론이 없고 우리 국민들이 잘만 마음을 다지면 정말 「선진조국」도 만들 수 있을것 같다.
바로 여기에 가장 긴요한 것은 정치가의 웅변도, 돈도, 지하자원도 아니다. 역시 국민의 튼튼한 도덕적 기반이 요구된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철학자의 어려운 설명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데 필요한 규율이다.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먼저 예의를 차려야 한다.
예는 곧 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인은 글자 모양 그대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고도 설명한다. 사람들이 최소한 인과예로써 관계를 맺을때 친애와 신뢰는 유지할 수 있다.
이번 노사분규는 단순히 임금의 다과를 시비하는 차원을 넘어 도덕적 관행과 미풍양속을 서로 존중하는 인간회복의 새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내일에의 희망을 갖고 재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 모두는 한숨만 짓는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다시금 인간다운 정리를 확인하며, 또 하나의 경제기적을 이룩하는 계기를 찾아야 한다. 인간회복은 곧 경제회복의 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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