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광화문 광장'은 한건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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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원래 위치에서 14.5m 북쪽으로 물러나 앉은 광화문에 제자리를 찾아주고 그 앞에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던 월대(月臺.대궐의 전각 앞에 놓인 섬돌)와 해태상을 되살리겠다는 계획은 시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잿빛 도시 서울에서 전통 문화의 향기를 음미할 기회가 생긴다는 데 환영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 광화문 앞에 8000여 평의 광장이 들어서면 서울 시민들은 서울광장.숭례문광장에 이어 또 하나의 산책 코스를 갖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등재를 위한 문화재청의 '기획 복원' 의도를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발표에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해야 할 서울시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광장 조성에 찬성하지만 교통 혼잡을 최소화할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문화재청이 서울시와의 사전 협의 절차를 생략한 건 아니다.

지난해 10월 이승규 문화재청 차장이 서울시를 방문, 광장 조성 계획을 털어놓고 협조를 부탁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광장에 편입될 사유지를 수용할 비용 등을 문화재청이 부담한다면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통 관련 부서는 광장이 조성됐을 경우를 가정해 교통 영향 분석까지 끝냈다. 담당 공무원은 "차량으로 광화문 앞 삼거리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평균 지체 시간이 현재 190초에서 광장 조성 뒤에는 427초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고 밝혔다.

물론 서울시의 교통 영향 분석은 광장의 세부적 디자인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재청의 기본 계획만을 전제로 한 것이긴 하지만 교통 혼잡으로 인한 대가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안게 됐다.

또 일부에서는 행정적.실무적인 뒤처리를 담당해야 할 서울시를 제쳐 놓고 정부가 선심 쓰듯 이벤트성으로 발표한 데 대해서도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도로의 선형을 변경하거나 위치를 조정하는 권한은 서울시에 있다. 서울시가 끝까지 반대하면 광장 조성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관계 기관 간 충분한 협의 없이 문화재청이 불쑥 계획을 터뜨린 것은 역사 복원보다도 '한 건 주의'에 더 집착한 결과가 아닌지 묻고 싶다.

신준봉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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