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업적 욕되게 함은 결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현민 유진오박사의 장례절차는 지난 5일 가족들만의 삼우제로써 거침없이 끝낸 셈이다. 장례날은 날도 맑게 개고 바람도 고요하여 많은 문상객들이 서울대학병원의 영결식장으로 모여 광주묘소까지 고인을 아끼는 정성어린 애도의 분위기에 젖어있었다. 「삼우제날엔 비가 촉촉히 내리고있었다. 분묘도 잘 이룩되었고 잔디도 골고루 덮여 있었다.
제례를 마치고 가족들의 뒤를 따라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문득 또 생각이 났다. 『왜들 조용할수 없을까…』 하는 것이 현민의 가슴을 누르는 무거운 생각이 아닐까 싶은 것이었다. 그것은 누구도 대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가는 이는 가거니와, 그 마음 가볍게 뒷일을 걱정치 않을 만큼 일을 조용히 마무리지어 주어야할 것이거늘 왜 말썽스러운 짐을 먼길 떠나는 내 등에 꼭 지워줘야만 하느냐. 모르기는 하거니와 이것이 저 세상으로 가는 현민이 이 땅에 남겨두고 싶은 말이 아니겠느냐 싶은 것이다. 그래, 그게 뭐냔 말이냐고 생각 있는 분들은 스스로 그 자신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그 무슨 벼슬이라고 나라에서 주는 감투를 받아쓰기는 하고도 얼마 아니가서 병환으로 말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형편에서 만3년하고도 8개월, 남짓 병원의 침대생활을 하다가 먼길을 떠나는 마당에 35년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그 옛날 소현동 보성전문학교시절로부터 오늘의 고려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시간강사로, 전임교수로, 또 무슨 장으로 나중엔 총장으로서 이 나라 교육자중에서 쉽지 않은 장기간이요, 또 우리 민간 최고학부의 육성 책임을 맡아봤던 그 업적을 욕으로 돌려야한다는 것인가.
그것도 대학의 소수 학생들 뿐이 아니고 교수라는 사람도 네 다섯이 무슨 간판을 만들어들고 소위 「데모」를 했던가 하면, 그들에 앞서 행동이 과격했던 학생들은 빈소 제단에 괴놓았던 조화도 몇 다발 끄집어내다가 일부 밟아버리고 그 명패를 불태웠다니 그 학생들, 그 교수란 분들만의 면목 뿐 아니라 고려대학교의 그 역사와 그 면목은 어디에서 다시 찾아봐야 할 것인가 하는 한탄이 아니 나올 수 없다.
마침 그 학생들 한 백여명이 빈소를 차려놓은 대강당 문 앞에 모여 소리를 지르며 무슨 구호를 외칠 때와 그 뒤에 학생 몇 명이 강당에 들어와 빈소제단 위로 오르내리며 조화가 그득한 쪽을 헤매며『누구의 것』을 찾는 것 같은 시늉을 하는 것을 다 볼 수 있었다.
그러고 있을 그때 마침 강당 안의 좌석, 바로 내 뒤에 앉아있는 사람들 중 『글쎄 빈소를 왜 이리 가져왔을꼬, 아니 집으로 가져가지…』하는 말을 듣고 나는 휙 뒤를 돌아보고 『뭐가…뭐요』하고 나직이 소리를 질렀다. 그때 그 자리에는 내가 잘 아는 고려대학교수 한사람이 있었다.
그 교수는 현민의 강의도 많이 들었을 사람이었다. 그때 다시 강한 어조로 그 학생들이 고려대학교 학생 전부를 대표하는 것이냐고 물었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현민은 헌법학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으나 경성대학교의 공법·형법·민법교실에서도 연구과정을 거쳤고 일찌기 경성제대의 청량리 대학 예과에서 법학개론 강의를 했을 정도로 그의 공부는 폭이 넓었다. 일본인교수며 법관들이 젊은 조선인 법학도 유진오를 몹시 아끼며 다각적으로 꾀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때문에 보성전문과 고려대학교에서 현민의 강의에는 법과 이외의 학생들도 많이 청강했었다고 듣고 있다.
고려대학교 대강당에 설치된 빈소를 에워싼 소란은 그대로 그치지를 않고 경찰에서는 빈소 내외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폭력행위와 관련하여 다섯명의 교수진의 데모 같은 행위에 대하여도 조사키로 하고 경찰에 출두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나 교수들은 출두치 않았다고 하니 일이 어떻게 될것인지 궁금하다.
또 교우회의 간부들은 모임을 가지고 대학 내에서 벌어진 불명예스러운 소란사태에 대한 책임을 추궁키로 하여 데모를 벌인 다섯명 교수는 곧 퇴직시켜야 한다고 대학당국에 의견을 제시했다고 하니 사태가 어느 정도에서 진정될는지 염려되는 것이다. 현민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갔다.
조용히 먼 곳으로 떠난 현민에게 다시 뭐라고 대학내에 벌어진 일로 해서 가슴아픈 일이 있게 해서는 아니 될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사회에는 그 어느 때고 그 시절의 예절과 사회질서가 뚜렷한 것이어서 그것이 시대의 움직임과 아울러 사회의 변천도 따르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 모든것이 쌓이고 쌓이는 가운데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쌓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현민이 아껴 길러온 『안암골 호랑이』 ,호랑이는 산중의 왕이라 일러온 만큼 그 위풍과 기골이 뛰어남을 누구나 예로부터 일러 왔다. 그렇다고 호랑이라면 다 하나같이 우람스럽기도 어려운 것이다. 안암골 호랑이도 모처럼 현민이 그의 양호기(양호기)에서 보여주듯 애써 길러왔다고 하나 그 중에는 그 꼴이 호랑이답지 못하고 고양이 비슷한 것도 생겨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그 호랑이 중의 일부 소수가 호랑이의 교양을 저질러 가지고 경찰의 간섭을 받아야 한다느니, 또 그 윗자리의 몇몇 교수들이 예절에 벗어나는 행동으로 학생들의 어떤 폭력행위에 영향을 끼쳤다느니 하는 혐의로 그들 역시 경찰에 불려 다니는 사태가 생긴다는 것은 이미 조용히 저 세상에 가 있어야할 현민에게 생각 밖의 불안을 끼쳐 주는 일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학교 당국에서나 경찰에서 이번 고려대학교내의 소란스러웠던 사태를 부드럽고 너그럽게 처리함으로써 현민 유진오박사의 이름을 더 이상 세상에서 뇌까리게 되지 않도록 생각해 줄 수는 없겠느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끝으로 다른 젊은 한 마리의 안암골 호랑이의 외침을 여기에 되새겨 보면서 고려대학교와 안암골 호랑이의 자유와 정의의 기품이 더 왕성해지도록 깊이 축복하고자 하는 바이다.
『고려대의 영원한 스승 유진오박사를 편안히 보냅시다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