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소상공인들 폐업 무료로 도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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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3000곳에 컨설팅 ‘폐업 119’ 고경수 대표
“사업 정리 잘해야 재기 쉽다” 경험서 체득
전용 앱 만들어 설비 헐값 처분도 막아줘

폐업 컨설턴트 고경수 대표는 “잘 실패해야 재기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폐업 컨설턴트 고경수 대표는 “잘 실패해야 재기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경수 ‘폐업 119’ 대표는 국내 최초의 폐업컨설팅 전문가다. 폐업 119는 2014년 문을 연 이후 ‘스마트한 폐업, 새로운 출발의 시작이다’를 슬로건으로 소상공인들의 사업 정리와 재기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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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부터 무역·유통·정보기술(IT) 등 다양한 분야의 회사를 운영했던 고 대표는 주변의 많은 자영업자가 ‘묻지마 폐업’을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권리금을 주변 시세보다 적게 받거나 집기, 설비 등을 헐값에 매각해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폐업자는 매출이 줄어도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막연히 ‘잘되겠지’ 기대하다 폐업 적기를 놓치고, 폐업 결정을 한 후에도 적절한 처리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다 손해를 보게 되죠.”

고 대표는 잘 실패해야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믿고, 폐업 위기에 놓인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폐업부터 재기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실시했다. 폐업 119가 사업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는 모두 세 가지다. 폐업 위기에 놓인 회사를 진단·분석해 ‘폐업하는 것이 맞는가’를 판단하고, 이후 사업주가 폐업을 결정하면 시설물 매각과 행정처리에 대한 맞춤형 컨설팅을 실시한다. 또 전업자를 위한 구인·구직, 재창업 서비스도 지원한다. 지난 4년 동안 폐업 119를 거쳐 간 업체는 3000곳이 넘는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를 개발해 중고 설비 매매가 투명하게 이뤄지는 환경도 만들었다. 폐업자가 사업장 매물 정보와 중고 집기류에 대한 정보를 직접 등록하면, 중고설비 매입업체들이 경쟁 입찰을 통해 물건을 구매하기 때문에 가급적 높은 가격에 집기를 매각하는 게 가능하다. “기존에는 업체들이 부르는 게 값이었어요. 100만원짜리 집기가 10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려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거든요. 폐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팔 수밖에 없고요.”

중요한 건 폐업 컨설팅이 100% 무료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고 대표도 처음부터 무료로 컨설팅을 실시할 계획은 아니었다. 기업 비용 절감 컨설팅 사업체를 운영하던 그는 폐업 컨설팅 분야가 블루오션이라 믿고 사업을 기획했다. 건당 100만원의 비용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폐업 위기에 놓인 회사를 방문해 보면 90% 가까이가 혼자 운영하는 영세업체였다. “사업에 실패해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는 없었어요. 그렇다고 그들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는 것도 불가능했죠.”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본인의 경험도 한몫했다. 그의 인생도 실패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선배와 함께 무역회사를 차렸다 망했고, 이후 식품원자재 수입업에도 손을 댔다 실패했다. IT·인테리어 사업 등에도 도전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학 때는 양계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면서 5년 동안 식구들과 함께 지하 단칸방에서 생활한 적도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게 예전에 제가 받은 호의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극복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글=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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